에세이 63

글을 쓴다는 것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쓰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일기와 글쓰기를 구분 못 할 만큼 우매했지만,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기로 했다. 성장할 때의 결핍은 나의 약점이었다. 엄마와 딸 사이는 애틋하기 마련이라지만 사춘기 시절 우리 사이는 다정하지 못했다. 마음을 읽어 주지 않는 엄마에게 늘 불만을 달고 살았고, 미움이 있었다. 철이 들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자식 여럿을 키우다 보면 손이 가지 않는 자식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앞가림 잘해서 신경을 덜 쓴 걸 거야.'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언젠가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감정을 털어내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예단이 안 된다. 마음의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

일상. 에세이 2024.11.18

글은 관상이고 골상이고 심상이다.

얼마 전에 독서 모임 선생님으로부터 관상과 골상과 심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글쓰기와 비추어 생각해 보니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다. 글의 출처를 찾아보니 송나라 재상인 법문 공이 관직에 오르기 전에 찾아갔던 관상쟁이에게서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출처 관상 불여 골 상 골상 불 여심상 - 觀相不如骨相 骨相不如心相 : 네이버 블로그) 관상(얼굴상)은 골상(뼈상) 보다 못하고, 골상은 심상(마음상) 보다 못하다송나라의 관상가 송나라 법문 공이 어느 날 관상쟁이를 찾아갔다. " 내가 재상이 될 상인가?" "당신은 재상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법문공은 관상쟁이를 다시 찾았다. "내가 의원은 될 수 있겠는가?" "왜 의원이 되려 합니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지기 위해 재상이 되고 싶었으나..

일상. 에세이 2024.11.17

변화와 익숙함의 사이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휙휙! 바뀌는 요즘 사회에 멀미 같은 어지럼증이 날 정도다. 변화를 좋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즘의 시대에 얼추 맞추어 사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나 보다. 변화보다는 익숙함에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온라인에서 캔바 나눔 강의를 들었다. SNS를 하다 보면 캔바나 미리 캔버스 같은 디자인 플랫폼을 자연스럽게 접한다.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고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초보지만 대략의 기능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아니 이렇게 좋은 기능들이 있었다고? 난 그동안 뭘 한 거지? 아주 기본 기능만 주야장천 쓰고 있었네!"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는 기능을 배워보려는 의지..

일상. 에세이 2024.11.16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라틴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요즘 한동일 작가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배우 로빈 윌리엄스( 존 키팅 선생님)가 외쳤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 사실은 라틴어 시의 한 구절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Ad Astra Per Aspera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라틴어 명언이다. 처음엔 "힘내자"의 의미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내 삶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 문장이 특별해졌다. 매일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지만,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쓰지 못하는 날이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루다. 남편은 내가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것에 걱정을 내비쳤다. 자신은 글은 모르지만 글 쓰는 것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침 출근길을 차로 동행해 주면..

일상. 에세이 2024.11.15

엄마! 오랜만에 순댓국

해가 짧아진 요즘 여섯시면 이미 날이 어둡다. 퇴근을 서둘러 밖으로 나오니 벌써 불빛들이 선명하다. 밝은 해가 있는 낮이 좋다. 늦가을, 이맘때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저녁이되면 조용한 정적이 감도는 시골의 밤은 고독하고 쓸쓸하다. 사방이 어두컴컴한 시골의 적막함이 싫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만이 적막을 깰 뿐이었다. 불빛이 많은 도시의 밤과는 사뭇 다르다 늦가을 찬바람을 맞으며 산 너머로 해가 사라지는 것을 매일 보았었다. 들 일을 간 엄마와 아버지는 사방이 깜깜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가을엔 수확철이라 이것저것 손가는 일이 많았던가 보다. 적막한 집에서 컴컴한 외로움을 혼자 견뎌야 했다. 지금도 짧은 해가 사라지고 난 후의 어스름한 저녁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다. 퇴근..

일상. 에세이 2024.11.14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늦가을 아침이다. 기온이 싸늘해지니 행동이 굼떠지고 꾀가 난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둘째 재이 방에서 알람시계가 목이 터져라 울리는데도 딸은 꿈쩍 않는다. 네 살배기 강아지가 누나의 콧구멍을 핥아도 고개만 피할 뿐 일어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땐 벌떡 일어나 무조건 방을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하루가 조금씩 미루어지는 느낌이다. 게으름은 잠시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딸은 한참을 뭉그적거리다가 실눈을 뜨고 알람시계를 슬쩍 보더니 총알이라도 발사된 듯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러다가 또 스르르 몸에 힘을 빼고 눕기를 두세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씻으러 화장실로 간다. 뇌를 깨우고 그제야 하루를 시작한다. 아주 밤늦게까지. 사람은 아침 시..

일상. 에세이 2024.11.13

건강 지킬 수 있을 때 지키자

건강검진을 위해 연차를 냈다. 출근 시간보다 더 서둘러서야 예약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국가 건강 검진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에서 2년에 한 번씩 가까운 병원에서 하고 있다. 건강하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검진할 시기가 다가오면 괜스레 불안하다. 건강 염려증까지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어가니 몸도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것 같다. 꾸준하면서도 강도 높은 운동을 하지 않은 지가 꽤 되었다,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습관이 잡혀있다고도 자신할 수 없다. 건강에 불안감이 생겼던 이유다. 30분씩 매일 아침 걷는다. 콧잔등에 땀이 살짝 올라올 만큼의 걷기 운동이 내게는 가장 좋은 것 같다. 운동하는 마음으로 걸어서 출근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각이 걱정될 땐 버스를 탈 때도 있다. 주말엔 출근을 안 하니 당연히 걷는 것을 건너..

일상. 에세이 2024.11.12

상실감에서 나를 지키는 힘

"유이 엄마야! 가을 무가 맛있어서 주고 싶은데 꼼짝 못 하고 있으니 ... .너희 형부가 있었다면 차로 휘리릭 가져다주었을 텐데." 예순이 넘은 둘째 언니의 전화다. 언니는 올여름에 남편을 떠나보냈다. 지금은 서울 집에서 마음을 잡지 못하고 남편 생전에 정붙이고 살던 시골집에 내려가 있다. 언니 말로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정리해야 할 물건이나 서류 또는 도시가스 문제 등 처리할 게 많아서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마음 추스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해서인 듯하다. 스물다섯에 형부를 만나 결혼했고, 자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나이가 들어서도 투닥투닥 하는 것을 보고 나는 어째서 부부 싸움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르냐고 했었다. 젊은 부부들처럼 사랑이 많은가 보다며 놀리곤 했다. 두 사람은..

일상. 에세이 2024.11.11

도서관보다 공원

도서관에 가려고 나섰다. 책 두 권과 노트북을 챙겼다. 딸 유이도 함께다. 집에 있을 땐 몰랐는데 나와보니 햇살이 어찌나 따스하던지 몸이 나른 해지고, 마음이 녹아내린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어지럼증이 날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쪽빛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만 같은 짙푸름이다. 집에서 도서관에 가는 길은 작은 다리를 건너 큰 도로변의 신호등을 지나 오르막길을 얼마 동안 씩씩 거리며 걸어야 한다. 신호를 기다리며 큰길에 섰다. 황금색 은행나무 뒤에서 햇살이 속삭인다. "오늘은 도서관보다는 공원에서 나랑 놀아!" 무거운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도서관이 아닌 공원으로 갔다. "유이야! 햇살이 좋다. 공원으로 가자!" 본래 계획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 후에 공원을 갈 생각이..

일상. 에세이 2024.11.10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

생각에 꼬리를 물게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그랬습니다.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라는 첫 줄에서부터 질문을 주고 생각을 줍니다. 김지수 작가와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 혹은 삶에 관해 묻는 인터뷰 형식의 책입니다. 은유가 가득해서 곱씹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책 전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그 선물을 돌려주는 것이 아닐는지요.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라네."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사랑이라는 단어도 크고, 용서라는 말도 큽니다. 사랑과 용서 사이에서 고민한 경험이 있습니다. 원래 사랑은 아름다워서 쉽다고 생각했고, 용서는 그릇이 크고, 내면의 힘이 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렵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

일상. 에세이 202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