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3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낙엽 하나가 사선을 그리며 발아래 떨어진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니 작고 벌레 먹은 나뭇잎이지만 내 것 같아 특별해 보인다. 나만 느끼는 작은 행복이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다. 많이 가져야 삶이 윤택해지는 거라고 믿었고, 행복은 미소 지으며 내게 올 줄 알았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삶은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마치 어렸을 때 가난한 우리 집이 이해되지 않을 때처럼. 내 부모는 부지런한 부자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다. 사시사철 게으른 적 없었고 허리가 휘게 일하는데 왜 우린 항상 그 자리 그대로 가난한 것일까. 실제로 엄마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엄마랑 아버지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하러 나가서 어두워져서야 집에 오는데 왜 우린 부자가 안 돼?" 정확한 대답은 기억나지..

일상. 에세이 2024.10.17

이제는 나를 돌보는 시간

오랜 시간 내 삶의 중심을 아이들에게 두었었다. 아이들과 남편의 뒤에 있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달려왔을까.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에너지를 많이 쓰고 살았다는 생각에 좋기도 하면서 동시에 안쓰럽기도 하다. 열심히 살았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열심히는 살았지만 아끼고 소중하게 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직장인이다 보니 출근 준비 때문이라도 매일 거울을 본다. 오늘 아침에도 예외 없이 거울 앞에 섰다. 예전의 젊고 활기찬 모습은 어디 가고 다 늙은 여자가 노안의 실눈으로 짙어진 기미를 노려보고 있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불안해 보인다. 자신을 스스로 돌볼 만큼 삶이 여유롭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돌볼 시간이다. 어느 날 아이들이 다 컸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일상. 에세이 2024.10.16

우아한 엄마 되기

부모 노릇이 아직도 서툴다. 우리 엄마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어떻게 키웠을까. 초등학교에 가기 전 엄마는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날에는 ‘진짜 엄마’가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작은 김치 항아리를 옮기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박살이 났다. 깨지는 소리가 퍽! 하고 어찌나 무섭던지. 엄마의 불벼락이 떨어지겠구나!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었다. 김치가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김치만 못 먹게 된 것이 아니고 항아리까지 깼으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아이고! 김치 못 먹게 됐네! 아까워서 어쩌냐!"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혼나겠구나 싶으면 예상 적중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게 다였다. 책이나 드라마에서의 엄마..

일상. 에세이 2024.10.15

가을 수채화

가을 색채가 아름답다. 그새 붉어진 나뭇잎이 놀이터 나온 꼬마의 머리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발밑으로 떨어진다. 까르르! 웃는 아이 모습이 가을 수채화처럼 맑다. "너는 세상이 평면이냐? 원근법도 모르냐? " 중학교 2학년 미술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미술 선생님이라서 수업 시간에 당연하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듣고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말이 지금껏 잊히지 않고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꿈이라는 것과 연결되어서 그렇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누구에게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미술 시간이 좋았다. 적어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4절지 스케치북에 4B연필로 내 맘대로 이것저것 그리며 놀았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가을 풍경화 그림이었으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반 아이들 모두..

일상. 에세이 2024.10.14

가능성과 희망

마음은 부지런히 쓰고자 하나 실력이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책은 스승이라더니 게으름에 관한 책을 읽던 중 딱 맞는 글이 나타난다. "내 안에는 '큰 나'가 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주문을 외듯 중얼거린다." '나'는 전혀 작지 않아! 더 큰 '나'가 내 안에 있어. 신기하게도 쓸 힘이 생긴다." 그렇게 하루의 약속을 지켜나간다. '나'라는 단어 안에는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숨어 있어서 좋고, 희망이 보여서 좋다. 행동하지 않아도 채워지는 느낌이랄까. 일상의 생각과 감정을 쓰기로 하고 스무날 가까이 실천하고 있다. 매일 쓰는 것이 부담스럽지만 스스로 정한 약속이기에 지키려고 노력한다. 오늘은 피곤해서 쉬고 싶다는 타협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주문을 건다. ‘더 큰 나가 내 안에 ..

일상. 에세이 2024.10.12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들어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기사를 찾아 읽었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이 소식은 하루 내내 이슈였다. 주인공은 1970년생 올해 53세 여성작가 한강이다. 온라인에서는 과거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회자되고, 노벨 문학작품도 인기 검색어다. 둘째 아이가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채식주의자", "엄마를 부탁해", "소년이 온다"를 3년 전에 구매한 기억이 있다. 서점마다 책을 구할 수 없을 만큼 화제의 책이 되었다. 틈나는 대로 읽어야겠다. 노벨문학상은 역사가 120년이다. 세계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단독으로만 받을 수 있는 무게가 대단한 상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같이 기뻐하고 좋아할 일이다. 한두 권의 베스트셀러로 받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

일상. 에세이 2024.10.11

아침을 달리는 아이들

일상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매일 특별할 수는 없다. 작은 일에 생각과 감정을 더 하는 소소한 작업이다. 날 것 같은 내용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용기를 낸다. 쓰기로 했으니 쓴다. 하고자 마음먹은 것을 하려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엄격한 상사 한 명쯤 두어야 한다. 허무할 만큼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니까. 20여 년 가까이 운동했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 직장에서 만난 동료의 다이어트 친구로 시작했지만 정작 본인은 한두 달 만에 그만두고 나는 50 넘어까지 꾸준히 했다. 먹고살기 힘들다며 쓸 돈이 없어도 운동은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운동비는 나온다. 중간에 몇 달씩 쉰 적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을 건강에 투자한 셈이다. 어느 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찾아..

일상. 에세이 2024.10.10

집 밥과 외식 사이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둘째는 아직도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먼 곳까지 실무교육을 받으러 다니느라 아침 일찍 나가고 어두워져서야 들어온다. 엄마의 퇴근시간인 6시 정시가 되면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배고파 집에 뭐 있어?" 딱히 준비된 음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한다. 퇴근길을 서두르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저녁거리가 뭐가 좋을까. 다들 밖에서 먹고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퇴근한다. 나는 집 밥에 진심인 엄마는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운 지가 몇십 해인데 아직도 살림이 서툴다. 반찬 솜씨가 제자리이고, 집안일이 손에 익숙지 않다. 아무리 직장 일과 병행한다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유독 심한 듯하다. 결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다. 남편에게는 친하게 지내는 일곱 명..

일상. 에세이 2024.10.09

아버지의 선물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놀이터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리고 있다. 막 익기 시작한 감나무의 감이 아이들 노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저건 감이야!" 옆에 있는 아이가 말을 받는다. "나는 감 먹어봤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한다. "나는 감 밥 먹어봤어! " 아이들의 대화가 천진스럽다. 감 밥이라니. 감을 먹어봤다는 아이에게 더 세게 보이고 싶은가 보다. 문득 친정집 감나무가 떠오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터만 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단감나무만이 푸른 잎과 열매를 맺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는 감을 좋아했다. 시골인데도 다른 집과는 달리 우린 감나무가 ..

일상. 에세이 2024.10.08

어머님의 시계

"어머님! 아버님과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신 거예요?" "아. 집에서 정해준 남자라서 얼굴도 안 보고 시집을 왔지. 그땐 다 그랬어." "처음 아버님 얼굴 보고 어떠셨어요?" "얼굴 뜯어볼 정신도 없었다. 식구는 많은데 먹을 건 없고. 보따리를 몇 번이나 쌌는지 모른다." 아버님과 살던 시골 집을 평생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이젠 서울 사람이 되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일 잘하시는 어머님이 이젠 침대와 거실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어머님 피부가 맑아지셨어요. 시골에 산 적도 없는 분 같아요." 너스레를 떨었다. "어서 가야지" 하며 남은 삶에 미련이 없다신다. 어머님 좋아 하실 만한 이야기를 이리저리 궁리해본다. 살아 생전 세 끼 따뜻한 밥을 하게 만들었다는 시 아버님 얘기를 꺼..

일상. 에세이 2024.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