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3

딸의 시간

둘째가 요즘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다. 근로자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엄마는 내키지 않지만 별수 없다. 평범한 가정에서 공부도 평범했고, 생각도 무난하다 보니 대학을 졸업했으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밤새 자기소개서를 쓰고, 예상 면접 질문지를 뽑아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다. 생산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고를 달리 키워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죄책감이 드는 걸까. 일찍이 깨지 못한 부모 탓 같기만 하다. 어린아이의 사고는 스펀지 같아서 주는 대로 흡수한다는데 부모가 방향성을 도왔다면 좋았을 것같다. 부드러운 찰흙과도 같아서 손길이 빚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진다는데 잘 빚어 볼 걸 그랬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방식의 육아와 아이 교육을 선택했을..

일상. 에세이 2024.11.19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늦가을 아침이다. 기온이 싸늘해지니 행동이 굼떠지고 꾀가 난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둘째 재이 방에서 알람시계가 목이 터져라 울리는데도 딸은 꿈쩍 않는다. 네 살배기 강아지가 누나의 콧구멍을 핥아도 고개만 피할 뿐 일어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땐 벌떡 일어나 무조건 방을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하루가 조금씩 미루어지는 느낌이다. 게으름은 잠시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딸은 한참을 뭉그적거리다가 실눈을 뜨고 알람시계를 슬쩍 보더니 총알이라도 발사된 듯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러다가 또 스르르 몸에 힘을 빼고 눕기를 두세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씻으러 화장실로 간다. 뇌를 깨우고 그제야 하루를 시작한다. 아주 밤늦게까지. 사람은 아침 시..

일상. 에세이 2024.11.13

시간을 대하는 태도

눈이 보배다.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겉멋이 있었던 학창 시절에는 안경을 쓴 친구들이 왠지 멋있어 보인 적도 있었다. 너무나 좋기만 한 시력에 교만했었다. 직장에서 해마다 채용 신체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 운동을 꾸준히 했고, 건강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몸은 이제 늙어간다. 눈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귀였다. 3년 전 직장인 채용 신체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 안 들리세요? 한쪽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봐요.” 들어보려고 집중하는데 일정부분의 소리가 조용하다. “ 심각하진 않지만, 오른쪽 귀가 난청입니다.” “난청이요?” 당황하니 난청이라는 단어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차마 난청이 뭐예요? 라고 질문할 수가 없어서 대뜸 한다는 말이 “왜요?” 였다. 왜요 라니. 하고..

일상. 에세이 2024.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