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3

느리지만 느리지 않다

기분도 날씨를 따라가나 보다.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마음에 한기가 느껴진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멘탈이 여지없이 나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본래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친한 친구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하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매번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런 내가 여러 사람과 소소한 내 일상을 공유했다. 그들도 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고,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색다른 경험에 흥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내보인 것에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지난 얘기가 되었건만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은 내 작은 그릇 탓인가 싶다. 마치 길을 잃어 엄마를 놓친 아..

일상. 에세이 2024.11.06

즐거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겨울이 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월동을 준비하듯 집안 이곳저곳을 괜히 살피게 된다. 베란다에 쌓아둔 헌 옷가지를 버리면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기타 세 개를 보았다. 두 개는 클래식 기타이고 하나는 일렉기타다.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도록 방치된 기타 주인에게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꾹꾹 눌러 참으며 친절을 가장한 한마디를 했다." 유이야 저 기타는 언제쯤 다시 시작할 거니?" 속마음은 '저렇게 둘 거면 중고 시장에 팔자!'였다. 딸 유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자식의 공부 문제로 속을 끓이거나, 걱정을 달고 산다는 부모를 본 적이 있다. 다행히 공부만큼은 스스로 욕심을 부리며 하는 아이라서 고마울 때가 많았다. 오히려 부모인 내가 자식에 관한 공부 욕심이 없었다. "그만하면..

일상. 에세이 2024.11.06

요즘 다시 도시락을 싼다

딸을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주던 때가 있었다. 둘째 재이가 편입 준비를 할 때였다.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에 딸은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엄마인 내 처지에서는 반수한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 4년제에 가준 것만 해도 어디냐! 싶었다. 살살 달래가며 재이가 적응해 주기만을 바랐지만, 불안한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다. 고3 때도 싸지 않았던 도시락을 꼬박 1년 동안 쌌고, 죽을 맛이었다. 직장까지 다니고 있던 차여서 더욱 힘들었다. 퇴근길마다 장을 봐야 했고, 집에 와서는 새우를 볶고, 감자를 조리고, 계란말이도 했다.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내색 못 했다.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기에 꾸역꾸역 도시락을 쌌던 것 같다. 은근히 사 먹으라고 부추겨도 보았지만 돈 없어서 싫다며 도시락을 고집하기에 ..

일상. 에세이 2024.11.01

진정한 글쓰기는 과정이다.

책은 쓰기와 연결된다. 진정한 독서의 완성은 읽고 나서 생각이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끄적이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려 하니 좀 막막하다. 감정이나 경험을 끌어내 글로 표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나의 모든 순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 또한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내공의 힘이다. 급한 마음 내려놓고, 내 속도에 맞추어 가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완벽보다 완성에 의미를 두자고 마음먹지만 스스로 봐줄 만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의 이은대 작가님의 무료 특강을 찾았다. 다행히 퇴근 무렵에 강의가 생각났고, 다른 강의 일정이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글쓰기 강의를 우선으로 들었다. 생각났을 때 들어 두지 않으면, 속..

일상. 에세이 2024.10.30

기록의 힘

우연히 1년 전 오늘 블로그에 남겨진 글을 공유하는 네이버 소식을 보았다. 작년 올해와 같은 날에 무려 세 개의 글이 올려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1년 전에 경제 신문을 읽고 스크랩한 기사 하나가 어제의 경제신문에서 내가 같은 내용의 기사를 정리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바로 현대차 3분기 누적 실적에 관한 기사였는데 1년 사이에 신문기사 내용은 반대였다. 23년 10월 27일 1년 전 기사에서는 현대차 3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는 발표 내용이었다. 그날 내가 요약한 기사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전기차는 우상향 곡선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현대차 측은 생산을 줄일 생각이 없다고 하였고, 친환경차 판매를 확대할 것이라는 기사 내용이었다. 반면 24년 10월 25일 한국 경제 신문 ..

일상. 에세이 2024.10.27

내가 매일 충실하게 하는 것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두면서부터 매일 걷고, 읽고, 쓴다. 직장인이자 가정주부지만 시간 탓하는 못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일과 가정도 소중하고, 나의 성장 발전도 중요하기에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다. 단 몇 줄이라도 읽고, 한 줄이라도 적을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책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문이며, 그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얻어지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졌다. 감정이나 생각을 쓰고 싶어지는 것은 물이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도서 후기를 주로 쓰던 내가 일상의 생각과 경험을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었다.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일상. 에세이 2024.10.26

진정한 사랑

"형님! 어머님 식사는 잘하시지요?" "원래 소식하시는 분이라…. 내가 입맛에 맞게 해드리지도 못하기도 하고…." 전화기 너머의 형님 목소리가 기운이 없다. 형님 나이 60이 넘었지만, 시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 때문에 전화를 자주 하기도 염치없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만 30년 넘게 근무하던 형님은 몇 해 전에 퇴임했다. 정년퇴직하고 나면 남들은 여행도 다니고 인생 2막을 잘도 시작하던데 내 형님은 퇴직하고 1년 만에 몹쓸 병만 얻었다. 깐깐한 남편 눈치 보느라 여행 한 번 마음 편히 다니지도 못했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싫어하는 아주버님 때문에 바쁜 직장생활에도 불구하고 외식도 안 하고 살았다. 밥은 꼭 냄비로 지은 밥만 드시는 아주버님이라서 형님 집에 가면 찰기 ..

일상. 에세이 2024.10.24

비가 오면 오는대로

일하다 말고 창문을 열었다. 가을비가 촉촉하다. 잠시 투두둑!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여름에 쏟아지는 시원한 폭우도 좋지만, 나뭇잎을 적시듯 보드랍게 내리는 가을비도 정겹다. 우산을 챙겨오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비를 감상하는 것은 좋지만, 우산 없이 비 맞는 것을 달가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딸 유이의 대학 입학 기념으로 유럽 여행을 갔었다. 대학 입학이 기념할 만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고등학교 3년 동안 너무 고생한 딸이었기에 무사히 졸업한 것만으로도 유럽 여행이 아깝지 않았다. 맞지 않은 음식과 서로 다른 문화의 차이로 스트레스가 심했고, 면역력에 문제가 생겨 각종 질환으로 힘들었던 딸이다. 스포츠 동아리 활동 중 아킬레스건 손상까지 입어 제때 치료를 못 하는..

일상. 에세이 2024.10.22

가을.낙조

구름에 걸린 해가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서해 끝자락 바다 위에 붉은빛의 길이 만들어진다. 마치 처음 낙조를 본 듯 숨을 멈추고 집중한다. 기어이 바다가 붉은 해를 삼킨다. 그제야 참았던 숨을 쉬며 여기저기 탄식의 소리가 들린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경이로운 색채에 감탄과 아쉬움의 소리다. "괜찮아 내일도 볼 수 있어" 아이를 달래는 젊은 아빠의 소리에 아이보다 내가 더 아쉬움을 달랬다. 늦잠이 달콤했다. 간밤에 휴일을 믿고 늦게 잠든 탓에 쉬이 잠이 깨지 않았다. 남편은 벌써 준비를 마쳤는지 옷을 차려입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었다. 강아지까지 함께 하는 나들이라서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다. 정리 안 된 집안 꼬락서니가 신경이 쓰여 청소라도 하고 집을 나서고 싶지만 참는다. 청소한다고 설치면 남..

일상. 에세이 2024.10.20

좋아야 할 수 있는 일

무엇이 바쁜지 요즘에 독서가 뜸해졌다. 읽고 싶은 책들이 눈앞에 쌓여 있는데도 잠시 앉아서 펼쳐보는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 책이라고는 써본 적 없는 내가 겁 없이 공저에 도전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려놓고 시작했기에 초고와 1차 퇴고까지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다른 참여자들의 글을 읽으면 주눅이 들어 포기하게 될까 봐서 읽지도 않았다.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데 아니다. 활발하게 이루어져 가는 공저 진행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부담과 압박감이 시작됐다. 최소한 민폐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를 붙잡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얼핏 들으니 퇴고가 시작되면 머리가 빠지고 지옥에 빠진다더니 빈말 같지 않았다. 글도 좋아지기는커녕 본래의 내 감정마저 사라지고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고 있었다. 손댈수록 좋아지라고..

일상. 에세이 2024.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