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3

영화 위키드 잊지 못할 추억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를 거야. 나는 한계가 없어." 위의 노래 가사는 영화 "위키드" 후반부에서 주인공 엘파바의 폭발적인 가창력에서 전율이 느껴지는 Defying Graviti (디파잉 그래비티)의 일부분이다. 기다렸던 영화 위키드를 딸 유이와 보고 왔다. 우정, 도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음악과 함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해주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남다른 기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더욱 특별한 기분이 느껴졌다. 내게는 추억이 담긴 티셔츠가 한 장 있다. 초록 피부를 가진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가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프린팅되어 있다. 10년 전의 유이에게 받은 선물이다.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딸 유이가 ..

일상. 에세이 2024.12.02

포기할 수 없는 사랑

겨울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춥다. 추운 날일수록 식구 생각이 난다. '옷은 따뜻하게 입고 나갔는지.' 밖에서 끼니는 잘 챙겨 먹었는지.'아침에 아무리 바빠도 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 한마디 해줄 걸 그랬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하는 성인인데 아직도 품 안의 아이 같기만 하다. 작고 별것 아닌 것에 자꾸 참견이 하고 싶어진다.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며 "굿모닝!"이라고 딸에게 인사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저녁이다. 아침 시간을 금쪽처럼 여기는 터라 일어나면 할 일이 많다. 일기 쓰고, 시간 가계부를 적고, 책 한두 줄이라도 읽는다. 밤새 어질러 놓은 부엌도 정리한다. 정신없이 출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보니 저녁이 되어서야 식구의 얼굴을 본다. 낯빛은 어떤지, 오늘 ..

일상. 에세이 2024.11.30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시작 점이다

나이 듦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1년이 마치 젊은 시절의 하루 같은 느낌이다. 시간이라는 것이 참 이상하다. 같은 24시간인데 어떤 때는 더디게, 어떤 때는 눈 깜박할 사이에 지나간다.연년생 두 아이를 키울 땐 시간이 더디기만 했다. "어서 커라." "시간아, 어서 가라." 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일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당시의 나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기에 급급했다.아이가 다니던 유치원 원장님이 늘 하던 말이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일은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에요. 돈? 투자? 어디에 해야 할까요? 아이한테 하십시오."그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들었다. 나란 사람 참 단순하다. 아이에게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나의 시간,..

일상. 에세이 2024.11.29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날의 맛

겨울, 이른 첫눈이 내렸다. 나뭇잎 위에 소복소복 올라앉은 눈이 밥공기 같기도 하고, 엄마가 가끔 만들어 주던 하얀 찐빵 같기도 하다.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그땐 국민학교라 불렀다. 눈이 오는 날이면 엄마는 특별한 간식을 만들어 주었다. 팥이 가득 든 찐빵이 그것이다.눈이 많이 오는 날에 엄마가 밀가루를 꺼내면 신이 났다. 반죽이 살짝 질어야 빵이 부드럽다고 엄마는 말했다. 늘어지는 반죽을 손안에 빠르게 가두며 삶은 팥을 넣고 잘도 오므렸다. 아버지는 미리 가마솥에 불을 지펴놓고 물을 끓이며 대기하다가 보자기를 깐 채반에 반죽을 올려놓고 한 김 나게 푹 찌면 완성이다. 모양은 울퉁불퉁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찐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은 눈이 펑..

일상. 에세이 2024.11.28

아주 보통의 하루,그래서 더 특별한

수요일 점심엔 보통 볶음밥이나 카레, 짜장밥 중의 하나다. 오늘은 볶음밥이다.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 볶음밥에 순두부 호박국을 먹었다. 든든하게 먹고 휴식을 위해 따뜻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직장에서의 점심은 고른 영양과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해 주어서 감사하다. 일과 중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다. 창밖을 보니 눈이 쌓이고 있다. 첫눈치고 폭설이다. 아침에 남편은 회사에서 눈 치울 일이 걱정이라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처럼 나가서 뛰놀고 싶다. 출근길에 눈 쌓인 나무를 보았다. 아직 단풍이 그대로다. 울긋불긋 낙엽이 아직인데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하나둘 커피를 들고 휴게실에 모인다. 커피 향이 퍼진다. 카페인을 거부하는 내 몸은 따뜻한 둥굴레차를 좋..

일상. 에세이 2024.11.28

뜻밖의 소식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했다. 몇 해 전 마련한 집의 전세 만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전세 대출이 어려운 요즘이라서 그런지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마음이 초조하던 차에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문제는 워낙 오래된 집이라 수리가 필요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해달라고 했다. 물가가 만만찮은 요즘 전채 인테리어비가 장난 아니게 비쌀 터다. 현재의 세입자를 보내줘야 하는 기한은 빠듯한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하고 싶어서 이견 조율을 해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퇴근 후에 계약을 위해 부동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편하지 않다. 집주인이 이런 불편한 계약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일부 계약금도 받아버린 상태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은 마음..

일상. 에세이 2024.11.27

호사다마에서 배우다

호사다마다. 흔히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한다. 좋은 일에 방해를 많이 받는다는 의미다. 호사다마를 제대로 경험했다. 며칠 전 직장에서 업무에 정신없을 때 그간 준비해 왔던 공저 책이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는 문자를 받았다. 작은 시작이 결실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여행 중이었던 남편이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여행담을 나누었다. 직장 동료들과 갔던 여행이 만족스러웠던가 보다. 모처럼 편안하고 밝은 얼굴을 뒤로 하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였다."왜 그러지? 명치끝이 너무 아픈데?""체했나 봐. 손끝을 따보면 어때?"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자리에 주저앉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견뎌보겠다고 했지만 살면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

일상. 에세이 2024.11.23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

책이 나왔습니다. 폭염이 한창이던 8월 중순에 원고 첫 페이지 첫 줄을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많이도 망설였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엔 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민도 없었지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신 백란현 작가님이 계셨습니다. 두려움과 설렘의 마음으로 공저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전자책 과정을 경험한 탓에 책 쓰기가 고되고 힘든 일인지 압니다. 이번엔 공저이지만 종이책입니다. 내 선택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고, 책임감이 느껴졌지요. 초고 날짜, 퇴고 날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초고를 들여다보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과연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 싶었지요. 수정할수록 내용은 산으로 가는 것 같고, 미로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퇴고 지옥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일상. 에세이 2024.11.22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다행이다

남편이 여행 중이다. 회사의 직원들과 여행계를 만들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간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해주고, 많지는 않아도 용돈도 챙겨 주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남편은 여행 사진과 함께 간단한 안부 문자를 보내온다. 눈앞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사진으로 얼굴을 보니 몇 년 사이에 부쩍 늙었다. 얼마 전 협심증으로 병원 신세를 져서 그런지 더욱 안쓰럽게 보인다. 활짝 웃으면 보기 좋을 텐데... .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마음이 덜 좋다. 좋아하는 여행 중인데 왜 표정이 밝지 않냐고 물으니, 대답이 애매했는지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의 얼굴에는 우리가 함께 걸어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젊었을 때..

일상. 에세이 2024.11.20

딸의 시간

둘째가 요즘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다. 근로자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엄마는 내키지 않지만 별수 없다. 평범한 가정에서 공부도 평범했고, 생각도 무난하다 보니 대학을 졸업했으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밤새 자기소개서를 쓰고, 예상 면접 질문지를 뽑아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다. 생산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고를 달리 키워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죄책감이 드는 걸까. 일찍이 깨지 못한 부모 탓 같기만 하다. 어린아이의 사고는 스펀지 같아서 주는 대로 흡수한다는데 부모가 방향성을 도왔다면 좋았을 것같다. 부드러운 찰흙과도 같아서 손길이 빚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진다는데 잘 빚어 볼 걸 그랬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방식의 육아와 아이 교육을 선택했을..

일상. 에세이 202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