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시간의 주인으로 살기

빛나는 오늘 2024. 11. 13. 23:31

늦가을 아침이다. 기온이 싸늘해지니 행동이 굼떠지고 꾀가 난다.  나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둘째 재이 방에서 알람시계가 목이 터져라 울리는데도 딸은 꿈쩍 않는다. 네 살배기 강아지가 누나의 콧구멍을 핥아도 고개만 피할 뿐 일어날 마음이 없어 보인다. 이럴 땐 벌떡 일어나 무조건 방을 나와야 하는데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왠지 하루가 조금씩 미루어지는 느낌이다. 게으름은 잠시 행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후회로 돌아온다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딸은 한참을 뭉그적거리다가 실눈을 뜨고 알람시계를 슬쩍 보더니 총알이라도 발사된 듯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러다가 또 스르르 몸에 힘을 빼고 눕기를 두세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씻으러 화장실로 간다. 뇌를 깨우고 그제야 하루를 시작한다. 아주 밤늦게까지.

사람은 아침 시간과 저녁시간 중 자신에게 집중이 잘 되는 때가 있다고 한다. 에너지를 쓰는의 힘이 다르다는 것일 것이다. 재이는 암만 봐도 아침형은 아닌 듯하다. 새벽 기상을 경험해 본 엄마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다. 나도 부지런 한 축에는 못 끼지만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아침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하루가 길기도, 짧기도 하다. 하루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아주 많은 일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처럼 주부이면서 직장인은 계획적인 하루를 보내지 않으면 낭패보는 일도 생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루 계획표를 대충이라도 적어야 한다. 시간대별로 해야 할 일을 머릿속에서 그림으로 그려본다. 일과 가족을 챙기려면  어쩔 수 없다. 구체적인 계획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의 시간표를 만들어야 그날의 할 일 을 마칠 수 있다.

누군가 내 머릿속에서  지시를 내리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해낸 것에 동그라미 하듯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느낌이 없지 않다. 나는 그것을 내 안의 '엄격한 나'라고 부른다. 내가 짜놓은 시간표대로 움직여야만 제대로 하루를 보낸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피로감이 쌓이는 것 또한 있을 수밖에 없다.  늦은 저녁 하루의 피로감을 아침 시간에 풀어낸다.

아침 시간을 활용하면 여러모로 유익하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내가 아침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고요함이다. 귀에 들어오는 미세한 소리조차 없는 깊은 새벽의 고요가 좋다.  딱히 무엇을 하지 않아도 깨어 있는 자체만으로도  좋을 때가 있다. 아침에 그리 많은 것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 한두 가지 정도의 습관이면 충분하다.

짧은 일기를 쓰고, 몇 줄의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한곳을 응시한 채 멍 때리는 날도 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여유 있는 아침을 보낸 날과 눈뜨자마자 씻고 나가기 바쁜 날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래서 재이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었으면 싶은 거다. 물론 나는 나이가 들면서 잠이 줄었는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지만 말이다.

시간의 주인으로 산다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며, 그리 어려운 일만도 아니다. 다른 사람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에 충실하다는 것은 자신만의 리듬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해야 한다"의 의무감으로 하루를 보낼 때가 있다. 의무감이 아닌 자발성의 노력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때도 있다.  해야 한다라는 의무감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같은 일이라도 '의무' 가 아닌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이 이루어질 때 일상의 모든 순간이 더 행복해질 거라고 믿는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내 마음의 속도로 걸어가는 것이  진정한 시간의 지배자가 아닐까.

적막한 고요속에서의 아침 시간은 온전이 나만의 것이라는 특별함이 있어서 좋다.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내 것이다. 어제의 부정의 마음은 지우고 오늘 새 도화지 위에 점을 찍는 마음이 좋다.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를 여는 아침 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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