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63

청소할 때와 글쓰기 할 때

책을 읽고 후기를 쓰던 나는 이제 막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엄마는 왜 글을 쓰냐고 딸이 묻는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왜냐하면 수없이 나에게 스스로 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내게 더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엄마 글의 정체성은 뭐야? 자신에게 떳떳한 글을 쓰고 있는 거 맞지?”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비워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이 곧 비우는 것이라고 느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청소를 한다. 청소하는 내 모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있어야 할 자리에 물건이 찾아가는 일이 안정감을 주고 기분이 좋다. 신나게 떠들면서 한다. 보..

일상. 에세이 2024.10.06

시간을 대하는 태도

눈이 보배다.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겉멋이 있었던 학창 시절에는 안경을 쓴 친구들이 왠지 멋있어 보인 적도 있었다. 너무나 좋기만 한 시력에 교만했었다. 직장에서 해마다 채용 신체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 운동을 꾸준히 했고, 건강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몸은 이제 늙어간다. 눈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귀였다. 3년 전 직장인 채용 신체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 안 들리세요? 한쪽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봐요.” 들어보려고 집중하는데 일정부분의 소리가 조용하다. “ 심각하진 않지만, 오른쪽 귀가 난청입니다.” “난청이요?” 당황하니 난청이라는 단어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차마 난청이 뭐예요? 라고 질문할 수가 없어서 대뜸 한다는 말이 “왜요?” 였다. 왜요 라니. 하고..

일상. 에세이 2024.10.05

내 손에 쥔 곶감 처럼 특별한

얼마 전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아버지 옆에 엄마도 나란히 있다. 살아생전 늘 함께 했던 것처럼. 추석 때 찾아보지 못해서 시간을 내었다. 문중의 선산은 이제 관리하는 사람도 없나 보다. 명절에만 하는 벌초라서 그런지 잡풀이 무성하다. 선산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주변의 봉분들은 하나 둘 비어간다. 관리가 되는 납골당으로 자손들이 옮겨 간 것이다. 지나다니는 짐승들만이 쓸쓸하게 말벗을 해주고 있는가 보다. 흰머리가 희끗한 막내가 온 줄 알면 왔냐는 말도 못 할 만큼 반가워서 활짝 웃기만 할 텐데. 종가의 장손이었던 아버지는 문중에서 가장 어른이었다.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아버지에게는 늘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허락을 구했다. 작은 아버지들의 도박으로 논 밭을 ..

일상. 에세이 20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