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포기할 수 없는 사랑

빛나는 오늘 2024. 11. 30. 23:04

 
겨울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춥다. 추운 날일수록 식구 생각이 난다. '옷은 따뜻하게 입고 나갔는지.' 밖에서 끼니는 잘 챙겨 먹었는지.'아침에 아무리 바빠도 딸에게 잘 다녀오라는 인사 한마디 해줄 걸 그랬다. 자기 앞가림 정도는 하는 성인인데 아직도 품 안의 아이 같기만 하다. 작고 별것 아닌 것에 자꾸 참견이 하고 싶어진다.
 
퇴근 후 현관에 들어서며 "굿모닝!"이라고 딸에게 인사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다. 가족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건 저녁이다. 아침 시간을 금쪽처럼 여기는 터라 일어나면 할 일이 많다. 일기 쓰고, 시간 가계부를 적고, 책 한두 줄이라도 읽는다. 밤새 어질러 놓은 부엌도 정리한다. 정신없이 출근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보니 저녁이 되어서야 식구의 얼굴을 본다. 낯빛은 어떤지, 오늘 기분은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다.
 
하루의 기분을 확인하고 나면 '별일 없어서 다행이구나!' 안도하며 글을 쓰거나 필사하는 등 다시 바빠진다. 이렇게 여유가 없어도 괜찮은 걸까.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는 마음으로 버티는 것 같다. 한 번에 한 가지밖에 못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자기 성장의 세계 안에 있고 예전의 두세 배쯤은 역할이 늘어났다.
 
한때는 일상이 단순했다. 살림과 일이 전부였으니까. 빠듯하기는 해도 남편 직장이 안정적이어서 그런대로 살았다. 삶의 방향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게 인생이다. 주식투자로 큰돈을 날려 보기도 하고, 무리한 교육비 투자로 경제 사정이 나빠진 경험도 했다.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살림하고 일하면서 독서와 글쓰기도 한다. 어려서부터 욕심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조금은 게으른 내가 이 모든 것을 잘하려고 아등바등하고 있다.  남편과 아이들은 말한다. '적당히' 하면 되지 않겠냐고. 적당하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급급하지 않고 적당히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장애물이다.
 
책 한 줄 글 한 줄 읽고, 쓰지 않을 때도 할 일은 많았다. 종일 직장 일하면서 식구들 챙기는 것이 벅찼고, 매일 해도 할 일은 넘쳤다. 시간이 없어서 집 청소도 못했다며 하소연하며 살았다. 정말로 바쁘게 살아보니 그 시절 시간 없다고 불평한 자신이 부끄럽다. 지금의 내 모습은 지난 내 과거 10년의 모습이라고 했다. 그러니 10년 후의 내 모습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라는 사람은 다재다능하고는 거리가 멀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는포기해야 한다. 과거에는 일과 집안일을 잘 끌어간 대신 배우기를 게을리했고, 지금은 집안일에 게으르다. 하지만 건강을 돌보는 것과, 가족을 챙기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문제다. 새해가 시작되기 전에 정리와 조율이 필요하다.
 
바쁘다는 핑계로 저녁을 챙겨주지 못하고 있는 요즘이다. 엊그제 주문한 식재료가 아직 냉장고에 그대로다. 시금치 된장국을 좋아하는 딸 유이에게 " 엄마가 맛있게 끓여줄게." 했던 것이 사흘 전이다. 날씨마저 추운 오늘은 꼭 따뜻한 시금치 된장국을 끓여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