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다행이다

빛나는 오늘 2024. 11. 20. 21:41

 
남편이 여행 중이다. 회사의 직원들과 여행계를 만들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간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해주고, 많지는 않아도 용돈도 챙겨 주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남편은 여행 사진과 함께 간단한 안부 문자를 보내온다. 눈앞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사진으로 얼굴을 보니 몇 년 사이에 부쩍 늙었다. 얼마 전 협심증으로 병원 신세를 져서 그런지 더욱 안쓰럽게 보인다.
 
활짝 웃으면 보기 좋을 텐데... .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마음이 덜 좋다. 좋아하는 여행 중인데 왜 표정이 밝지 않냐고 물으니, 대답이 애매했는지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의 얼굴에는 우리가 함께 걸어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젊었을 때는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사진 속 남편의 얼굴을 보니 저절로 이해 된다.
 
모자를 쓰고 있지만 희끗희끗한 머리와 눈가의 잔주름이 먼저 보인다. 견디고 인내한 굳게 다문 입술이 가장의 책임을 다하려 애쓰느라 만들어진 흔적처럼 보인다.
 
결혼 초기에는 미래에 대한 설렘만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미처 알지 못했던 현실적인 삶에 종종 지쳤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예민해지기도 하고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했다. 비 온 후의 땅이 단단해지듯이 이제는 서로의 얼굴에서 젊음 대신 신뢰를 보는 나이가 되었다.
 
건강이 나빠졌을 때 잘 살펴주지 못한 미안함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가까운 아내라서 더욱 서운했을 것이다.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는데 아프다는 소리 듣고 싶어 하지 않았고, 바쁠 때 도와주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 며칠 집을 비우고 보니 묵묵히 받아준 남편이 고마운 생각이 든다.
 
오늘따라 집안엔 가장을 필요로 하는 일이 많이 생긴다. 빨래가 밀리고 설거지 도와주던 손길이 아쉽기만 하다. 마음속 의중이 들켰나 보다. 돌아올 날짜를 꼽는 내게 아이들에게 엄마 도와주라고 말해놓겠단다. 이미 아이들은 잘 도와주고 있는데 말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다행이다.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자기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일 테다. 우리 두 사람이 선택하고 견뎌온 시간의 편린들이 스쳐 간다. 남편의 얼굴에서 충실히 살아온 삶의 흔적들을 보면서 남편으로부터 얻은 것이 많았음을 깨닫는다.
 
사진 속 남편은 복잡해 보이는 도시 한가운데 서 있다. 무슨 생각, 어떤 감정이었을지 떠올려 본다. 서로의 삶이 풍요롭기를 바라면서 함께 가는 동반자의 의미를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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