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호사다마에서 배우다

빛나는 오늘 2024. 11. 23. 22:33

호사다마다. 흔히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한다. 좋은 일에 방해를 많이 받는다는 의미다. 호사다마를 제대로 경험했다. 며칠 전 직장에서 업무에 정신없을 때 그간 준비해 왔던 공저 책이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는 문자를 받았다. 작은 시작이 결실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여행 중이었던 남편이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여행담을 나누었다. 직장 동료들과 갔던 여행이 만족스러웠던가 보다. 모처럼 편안하고 밝은 얼굴을 뒤로 하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였다.
"왜 그러지? 명치끝이 너무 아픈데?"
"체했나 봐. 손끝을 따보면 어때?"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자리에 주저앉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견뎌보겠다고 했지만 살면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119를 불러야 할 것 같은 직감이 왔다.

집 앞 다리 건너에 있는 119안전센터에서 바로 와준 구급차를 탔다. 평소 다니던 병원으로 가 달라고 했다. 의료 파업으로 거부당할 수도 있다고 했지만. 병원과 통화해 보더니 가능하단다. 가는 동안 두 다리가 저려서 바닥에 닿는 느낌이 없었다.  남편은 다행히 병원 도착 무렵엔 통증이 잦아든 모양이다. 구급 대원의 10점에서 통증이 몇 점이냐는 물음에 1~2점이라고 했다.

본인 이름을 수십 번 확인해 가며 이것저것 검사를 한다. 불안감과 지루함이 교차하며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피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오늘 글쓰기 완성을 못 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펼쳐진 노트북을 열어놓고 몇 줄 쓰다가 뛰쳐나온 까닭이다. 남편은 많이 안정되어 보이고 검사 결과는 두 시간 후에나 나온단다. 

휴대전화 모바일 기능에서 써볼까, 하는 마음에 열어보니 배터리가 없었다는 게 생각났다. 아무렇게나 걸치고 온 주머니에 충전기가 들어 있다. 왠지 남편 앞에서 충전기를 보이기가 미안하다. 쭈뼛거리며 머리맡에 주르르 붙어 있는 콘센트에 조심스럽게 꽂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남편이 역시나 그런다.
" 우와. 당신 대단하다. 그 와중에 충전기를 챙겼어?"
"아... . 음... . 그게."
차마 글 쓰려고 챙겼다는 말이 안 나온다. 

남편의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이왕 이리된 거 차분하게 써보리라 마음먹었다. 어림도 없다. 머릿속은 뒤죽 박 죽이고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쓰랴 싶었다. 걱정과 불안한 마음으로 글이 써질리가 만무하다.

 '감정을 위장하고 쥐어짜듯이 쓰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안 쓰고 말지. 남편도 불안할 텐데 말벗이나 해주자.' 덮었다. 

얼추 두 시간이 지났을 때 당직 의사 선생님이 왔다. "피검사랑 심전도 그리고 다른 검사에서도 이상 없어요. 혹시 소화기 쪽 문제일 수도 있으니 위장약 처방 해드릴 테니 약 받아서 집에 가셔도 됩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혹시 모를 만약에 대비해 소화기내과와 순환기 내과 두 곳을 예약하고서야 병원 문을 나섰다. 시간은 자정에서 10분 전이다. 

택시를 타야 했지만 집까지 가는 버스가 아직 끊기지 않은 모양인지 바로 앞에 섰다. 남편은 본인은 이제 괜찮으니까,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생각했다. 호사다마라더니 공저 책 나와서 좋아했더니 "이런 일로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구나!' 

다시 이삼일이 지났다. 남편은 그날 명치끝이 그렇게 아파본 건 살면서 처음 느껴보았다고 했다. 급체라도 한 걸까. 의사 선생님도 그랬다. 알 수 없는 통증이 있을 때도 있다고. 아무튼 천만다행이고 감사한 하루였다. 만약 여행 중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어땠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우리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이지 않은가. 

여행에서 돌아와서 생긴 상황이라서 다행이고, 심장 쪽이 아닌 위장 쪽일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감사했다. 살다 보면 이렇듯 예기치 않은 상황이 닥친다. 병원으로 가는 구급차 안에서 나는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나와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경제적인 것. 그런 걱정들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 생각해 보지 않고 살고 있다는 것에 창피함을 느꼈다. 아니 알면서도 모르는 척 피했던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무서우니까.

하지만 이제부터는 피하지 말아야겠다. 나도 자연의 일부다. 자연의 섭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준비도 시작되지 않을까. 살다 보면 아플 수도 있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삶은 좋은 일만 있는 것도 아니고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 삶이 좋다. 모든 순간에 감사하고, 지금을 충실히 살되 미래의 삶도 반드시 준비하면서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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