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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들어도 믿기지 않아 몇 번이나 기사를 찾아 읽었다. 대한민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이 소식은 하루 내내 이슈였다. 주인공은 1970년생 올해 53세 여성작가 한강이다. 온라인에서는 과거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회자되고, 노벨 문학작품도 인기 검색어다. 둘째 아이가 개인적으로 한강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 "채식주의자", "엄마를 부탁해", "소년이 온다"를 3년 전에 구매한 기억이 있다. 서점마다 책을 구할 수 없을 만큼 화제의 책이 되었다. 틈나는 대로 읽어야겠다. 노벨문학상은 역사가 120년이다. 세계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단독으로만 받을 수 있는 무게가 대단한 상이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같이 기뻐하고 좋아할 일이다. 한두 권의 베스트셀러로 받는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

일상. 에세이 2024.10.11

아침을 달리는 아이들

일상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매일 특별할 수는 없다. 작은 일에 생각과 감정을 더 하는 소소한 작업이다. 날 것 같은 내용에 부끄럽기도 하지만 용기를 낸다. 쓰기로 했으니 쓴다. 하고자 마음먹은 것을 하려면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 마음속에 엄격한 상사 한 명쯤 두어야 한다. 허무할 만큼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니까. 20여 년 가까이 운동했었다. 사회 초년생일 때 직장에서 만난 동료의 다이어트 친구로 시작했지만 정작 본인은 한두 달 만에 그만두고 나는 50 넘어까지 꾸준히 했다. 먹고살기 힘들다며 쓸 돈이 없어도 운동은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떻게 해서든지 운동비는 나온다. 중간에 몇 달씩 쉰 적도 있지만 꽤 오랜 시간을 건강에 투자한 셈이다. 어느 날 어깨가 아프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던 오십견이 찾아..

일상. 에세이 2024.10.10

집 밥과 외식 사이

작년에 대학을 졸업한 둘째는 아직도 취업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먼 곳까지 실무교육을 받으러 다니느라 아침 일찍 나가고 어두워져서야 들어온다. 엄마의 퇴근시간인 6시 정시가 되면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 배고파 집에 뭐 있어?" 딱히 준비된 음식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똑같은 질문을 한다. 퇴근길을 서두르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 저녁거리가 뭐가 좋을까. 다들 밖에서 먹고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퇴근한다. 나는 집 밥에 진심인 엄마는 아니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운 지가 몇십 해인데 아직도 살림이 서툴다. 반찬 솜씨가 제자리이고, 집안일이 손에 익숙지 않다. 아무리 직장 일과 병행한다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유독 심한 듯하다. 결혼한 지 한 달쯤 되었을 때다. 남편에게는 친하게 지내는 일곱 명..

일상. 에세이 2024.10.09

아버지의 선물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놀이터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리고 있다. 막 익기 시작한 감나무의 감이 아이들 노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저건 감이야!" 옆에 있는 아이가 말을 받는다. "나는 감 먹어봤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한다. "나는 감 밥 먹어봤어! " 아이들의 대화가 천진스럽다. 감 밥이라니. 감을 먹어봤다는 아이에게 더 세게 보이고 싶은가 보다. 문득 친정집 감나무가 떠오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터만 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단감나무만이 푸른 잎과 열매를 맺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는 감을 좋아했다. 시골인데도 다른 집과는 달리 우린 감나무가 ..

일상. 에세이 2024.10.08

어머님의 시계

"어머님! 아버님과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신 거예요?" "아. 집에서 정해준 남자라서 얼굴도 안 보고 시집을 왔지. 그땐 다 그랬어." "처음 아버님 얼굴 보고 어떠셨어요?" "얼굴 뜯어볼 정신도 없었다. 식구는 많은데 먹을 건 없고. 보따리를 몇 번이나 쌌는지 모른다." 아버님과 살던 시골 집을 평생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이젠 서울 사람이 되었다.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일 잘하시는 어머님이 이젠 침대와 거실 외에는 갈 곳이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어머님 피부가 맑아지셨어요. 시골에 산 적도 없는 분 같아요." 너스레를 떨었다. "어서 가야지" 하며 남은 삶에 미련이 없다신다. 어머님 좋아 하실 만한 이야기를 이리저리 궁리해본다. 살아 생전 세 끼 따뜻한 밥을 하게 만들었다는 시 아버님 얘기를 꺼..

일상. 에세이 2024.10.07

청소할 때와 글쓰기 할 때

책을 읽고 후기를 쓰던 나는 이제 막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엄마는 왜 글을 쓰냐고 딸이 묻는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왜냐하면 수없이 나에게 스스로 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내게 더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엄마 글의 정체성은 뭐야? 자신에게 떳떳한 글을 쓰고 있는 거 맞지?”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비워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이 곧 비우는 것이라고 느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청소를 한다. 청소하는 내 모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있어야 할 자리에 물건이 찾아가는 일이 안정감을 주고 기분이 좋다. 신나게 떠들면서 한다. 보..

일상. 에세이 2024.10.06

시간을 대하는 태도

눈이 보배다.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겉멋이 있었던 학창 시절에는 안경을 쓴 친구들이 왠지 멋있어 보인 적도 있었다. 너무나 좋기만 한 시력에 교만했었다. 직장에서 해마다 채용 신체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 운동을 꾸준히 했고, 건강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몸은 이제 늙어간다. 눈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귀였다. 3년 전 직장인 채용 신체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 안 들리세요? 한쪽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봐요.” 들어보려고 집중하는데 일정부분의 소리가 조용하다. “ 심각하진 않지만, 오른쪽 귀가 난청입니다.” “난청이요?” 당황하니 난청이라는 단어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차마 난청이 뭐예요? 라고 질문할 수가 없어서 대뜸 한다는 말이 “왜요?” 였다. 왜요 라니. 하고..

일상. 에세이 2024.10.05

겸손하고 낮은 마음으로

인생 후반전이라고도 하고 인생 2막이라고도 한다. 이름이야 어찌 되었든 늦은 나이에 시작한 배움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초등학교 입학식 날 설레임 과 기대감으로 운동장에 서 있는 기분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하는 공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백 점을 맞기 위해 밤마다 아버지와 받아쓰기 연습했었다. 지금은 잘 쓰기 위해 매일 글쓰기 연습한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일단 컴퓨터를 열고 앉는다. 한 줄을 쓴다, 쓰면서 떠오르는 대로 적어나간다.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생각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적다 보면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해야 하는지가 보인다. 조금씩 분량을 채워 가지만 초보티가 줄줄 난다. 자꾸만 편한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러다 보니 있었던 그대로의 상황을 쓴다고는 하나 말의 ..

일상. 에세이 2024.10.04

유이의 생일편지

'날마다 모든 면에서 나는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에밀 쿠에의 말이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책상 위에 굵고 진한 매직팬으로 써서 붙였었다. 에밀 쿠에는 약사였다. 어느 날 처방전 없이 통증을 멈추는 약을 지어달라는 지인이 있었단다. 너무 아파하는 그에게 어쩔 수 없이 통증과는 무관한 약을 지어주었다. "이 약을 먹으면 좋아질걸세. 내일 병원에 가보게나" 하면서 말이다. 신기하게도 지인은 약 덕분에 말끔히 나았다며 감사를 표했단다. 통증을 낫게 만든 건 약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 에밀 쿠에의 생각이다. 오며 가며 아이들도 이 확언을 눈에 담았나 보다. 오늘 딸 유이가 전해준 생일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엄마는 내 인생에서 의미 있고 특별한 존재야. 힘든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

일상. 에세이 2024.10.03

나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케이크를 먹는다

카톡! 카톡! 알림 음이 분주하다. 조용하던 가족 톡 방이 며칠 전부터 요란하다. 남편과 아이들이 곧 있을 내 생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계획을 짜는 소리다. 당사자인 내가 버젓이 보고 있는데도 "엄마가 최근에 뭐를 갖고 싶어 하더냐." 부터 여행을 좋아 하려나? 계절이 바뀌었으니 봄 가을 용 외투가 좋지 않을까. 겨울 용 가벼운 패딩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자기네 들 끼리 주고받는다. 여행이라면 내가 연차를 내야 할 상황인데도 마치 톡 방에 내가 없는 것처럼 대화를 나눈다.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 하여 그저 웃는다. 의도가 보이지만 모른체한다. '아이들과 남편 생일 상도 멋들어지게 챙겨 줘본 적이 없는데 내가 무슨.... .' 생일을 당당하게 누릴 마음이 없다. 큰딸 유이는 학업 중일 때 멀리 있다는 ..

일상. 에세이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