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청소할 때와 글쓰기 할 때

빛나는 오늘 2024. 10. 6. 20:02

책을 읽고 후기를 쓰던 나는 이제 막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일상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이다. 엄마는 왜 글을 쓰냐고 딸이 묻는다. 쉽게 대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왜냐하면 수없이 나에게 스스로 했던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뭇거리는 내게 더 많은 질문이 쏟아진다. “엄마 글의 정체성은 뭐야? 자신에게 떳떳한 글을 쓰고 있는 거 맞지?” 생각이 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비워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어수선한 내 삶을 정리하는 것이 곧 비우는 것이라고 느꼈다.

기분이 우울할 때는 청소를 한다. 청소하는 내 모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있어야 할 자리에 물건이 찾아가는 일이 안정감을 주고 기분이 좋다. 신나게 떠들면서 한다. 보통은 이럴 땐 아이들과 남편에게 엄청난 잔소리를 퍼붓는다. “이 집에서는 나 말고 치우는 사람이 없나 봐. 물건을 쓰면 제자리에 두는 사람이 없어. 왜 치약은 뚜껑이 맨날 열려 있는 건데? 아침에 식탁의 과자 봉지를 퇴근해서도 내가 봐야 하니? 유치원생도 자기 양말은 정리를 잘하는데 당신은 왜 그래?” 쉴새 없이 쏟아내는 잔소리 폭탄에 다들 귀를 막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내가 제풀에 꺾여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사실 그렇게 다다다 한바탕 잔소리를 끝내면 기분이 개운하다. 마치 내 할인을 응당 한 기분이다. 식구들은 억울할 터이다.

청소할 때의 또 하나의 내 모습도 있다. 화가 난 것도 아니고 청소가 싫은 것도 아닌데 한마디의 말도 없이 오롯이 청소에 집중한다. 그것은 내가 생각할 것이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지출을 해야 하거나, 글감이 떠올라 머릿속에서 혼자서 글을 쓰고 있거나, 식들과의 갈등을 풀어 보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거나 할 때다.  몸은 싱크대를 닦고, 나와 있는 컵과 그릇들을 정리하지만 생각에 몰입하는 시간이다. 식구들은 내가 청소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잔소리 불똥이 튈까 봐서인지 말도 붙이지 않는다. 그래서 조용히 혼자 청소하는 시간을 좋아한다. 시끄럽게 잔소리하면서 하는 청소는 꼭 필요할 때만 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나에게는 글쓰기도 청소하는 것과 같다. 도무지 내 인생이 정리되지 않는 것 같기만 할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잘살고 있는 것 맞아?” 머릿속이 복잡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뒤죽박죽일 때 글을 쓰면 정리가 된다.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들이 비워 나간다. 때로는 반대로 없는 것이 채워질 때도 있다. 잘못된 기억을 지금껏 안고 살았다는 걸 깨달을 때도 있고, 사춘기 시절에 엄마에게 반항만 했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이 바뀐다. 그 정도면 엄청 착한 딸 이었다는 것으로 말이다. 사실은 엄마도 나를 사랑했었다는 것이 알게 된다. 결핍이 채워지는 순간이다. 내 글의 정체성이 뭐냐고? “나도 찾아가는 중이다. 이 녀석아.” 자신에게 떳떳한 글이냐고? ‘최소한 남의 생각과 남의 감정을 쓰는 일은 없으니 떳떳한 것 아니냐?’ ‘그렇게 어려운 질문을 던질 거냐?’ 나는 아직 어려운 건 모른단다. 그저 청소할 때 느끼는 기분하고 글을 쓸 때의 감정이 같게 느껴진다는 것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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