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놀이터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리고 있다. 막 익기 시작한 감나무의 감이 아이들 노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저건 감이야!" 옆에 있는 아이가 말을 받는다.
"나는 감 먹어봤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한다.
"나는 감 밥 먹어봤어! " 아이들의 대화가 천진스럽다. 감 밥이라니. 감을 먹어봤다는 아이에게 더 세게 보이고 싶은가 보다.
문득 친정집 감나무가 떠오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터만 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단감나무만이 푸른 잎과 열매를 맺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는 감을 좋아했다. 시골인데도 다른 집과는 달리 우린 감나무가 없었다. 가을이면 이웃집에 주렁주렁 달린 붉은 감을 엄마는 부러워했다. 이웃집에서 수확한 땡감(떫은 감)을 맛있게 먹는 엄마를 보고 나도 한입 덥석 물었다가 입안에서 겉도는 떫은맛에 한나절은 고생한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쯤이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마당 담벼락 가장자리에 아버지 키만 한 나무가 있었다. 못 보던 나무였기에 무슨 나무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너희 아버지가 나 주려고 사 왔단다." 아버지는 감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해 단감나무를 사 왔다. 처음 몇 년은 감이 열리지 않았다. 키만 쑥쑥 자라 지붕 높이까지 자라기만 했다. 어느 해부터인가 감꽃이 피더니 감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주먹만 한 단감을 따던 때를 잊지 못한다.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열몇 개쯤 열렸다. 아버지는 햇살이 내리쬐는 가을 낮에 단감을 따서 가장 먼저 엄마에게 주었고 엄마는 행복한 듯 웃었었다. 다음 해부터는 가지가 찢어진다는 표현이 맞을 만큼 주렁주렁 열렸다.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눠 먹어도 될 만큼 열렸다. 엄마는 단감이라서 곶감을 만들지도 못하고 보관도 안 된다며 동네 이웃집과 나누어 먹었다. 우리 집 단감은 유독 껍질이 얇고 단물이 많았다. 배고플 땐 충분히 배를 채워주었고, 제사상에도 올리는 등 요긴하게 쓰였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가장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감을 따서 엄마 산소에 가져가곤 했다.
엄마는 예순을 앞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지금은 마트에서 사 온 감으로 엄마 기일 상을 차린다. 누가 시골집에 감을 따러 가겠는가. 까치와 부지런한 누군가의 간식이 되고 있겠지. 감나무를 보면 엄마를 보는듯하다. 엄마를 먼저 보낸 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쓸쓸한 집에서 주인 없는 감나무만이 아버지에게는 위로가 되었을 터이다.
삶이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나 역시 유한한 삶을 살고 있기에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 유년 시절의 잊지 못할 기억이 있어서 이 글도 쓰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와 아버지는 어려운 순간에도 웃으며 살았다, 서로를 아끼고 배려하는 부모를 보고 자랐다. 때로는 ”웬수 같다“ 말했지만 지나고 보니 사랑이었다. 나도 엄마와 아버지처럼 관계와 경험을 소중하게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감 밥을 먹어보았다는 아이는 손에 노르스름한 나뭇잎 서너 잎을 쥐고 몇 번이고 고개를 쳐들고 감나무를 본다. 뒤에서 재촉하는 아이에게 떠밀려 서툰 발걸음을 옮긴다. 따사로운 가을 햇살이 아이의 뒤통수에서 반짝인다. 미소를 지으며 졸졸 따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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