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시간을 대하는 태도

빛나는 오늘 2024. 10. 5. 21:07

눈이 보배다. 이런 말을 하게 될 날이 올 줄 몰랐다. 겉멋이 있었던 학창 시절에는 안경을 쓴 친구들이 왠지 멋있어 보인 적도 있었다. 너무나 좋기만 한 시력에 교만했었다.

직장에서 해마다 채용 신체검사를 하고 결과지를 제출해야 한다. 운동을 꾸준히 했고, 건강에는 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몸은 이제 늙어간다. 눈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귀였다. 3년 전 직장인 채용 신체검사를 하던 중이었다. “ 안 들리세요? 한쪽 귀가 잘 안 들리시나 봐요.” 들어보려고 집중하는데 일정부분의 소리가 조용하다. “ 심각하진 않지만, 오른쪽 귀가 난청입니다.” “난청이요?” 당황하니 난청이라는 단어가 얼른 이해되지 않았다. 차마 난청이 뭐예요? 라고 질문할 수가 없어서 대뜸 한다는 말이 “왜요?” 였다. 왜요 라니. 하고 보니 더 이상한 말이 돼버렸다. “난청이 왜 생긴 걸까요?” 마음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노인성입니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태연히 대답했다. 노인이 아닌데 노인성이라는 말에 잘못된 검사 결과라고 받아들였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 나이를 먹으면 청력 기관이 저하되어 청력이 떨어지는 거예요.” 확인 사살까지 한다. 집으로 오자마자 인터넷을 검색했다. 노인성 난청은 청력 감소에 가장 흔한 원인 중 하나이며 고주파부터 시작해서 저주파 소리에 영향을... . 어쩌고저쩌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이다. 알고 싶은 것은 왜 난청이 왔는가다. 고강도의 소음에 노출되거나 중이염 등 귀에 관한 질병이 난청을 유발한다고 쓰여있었다. 내 경우에는 어디에도 해당 사항이 없다. 굳이 이유를 찾자면 “메니에르병으로 인한 돌발성 난청이 올 수 있다”였다. 30대 후반에 주변이 빙글빙글 도는 심한 어지럼증에 시달렸다.의사는 이석증이라고 진단했다.  엄청난 공포의 어지럼증이었다. 증세가 한번 시작되면 눈을 감고 그야말로 시체처럼 누워 있어야 한다. 괜찮아진 후에도 한동안 정신적 상처에 시달려 운전이 겁이 났다.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서 외출하는 것이 무서웠다.
 
할머니 생각이 났다. 귀가 안 들렸던 할머니는 두 손을 모아 귀에 대고 큰 소리로 말해야 간신히 알아들었다. 그때의 할머니 나이는 칠십이 넘었었다. 관리를 잘해서 진행을 늦추면 좋다고 한다. 시작된 난청을 무슨 수로 되돌리겠느냐 말이다.
 
1년 전부터 휴대전화기 글자를 키웠다. 돋보기도 맞췄다. 당시에는 글자가 흐릿한 것 외엔 시력에 불편함이 없었다. 돋보기를 20분 이상 쓰지 말라는 의사의 말을 듣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답답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시원스럽지 않은 사물의 형태와 눈에 피로감이 자주 느껴진다. 안과를 갔다. 안과에 가면 시력검사부터 한다. 오른쪽 1.5, 왼쪽 2.0 “멀리 있는 건 잘 보이시네요” 가까이 있는 것을 못 보는 괴로움이 있기에 반갑지 않다. 컴퓨터 할 때만 사용하던 돋보기안경을 가져갔더니 책을 볼 때는 많이 불편했을 거라고 한다. 결국 다 초점 안경을 새로 맞춰야 한다. 명함처럼 생긴 처방전을 받고 돌아왔다.
 
‘내가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고 있구나’ 세월은 나이를 비켜 갈 수 없다. 어제보다 주름이 하나 늘었으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다. 몸이 변해 가는 것을 보면서 하루가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도 함께 깨닫는다. 시간을 이기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기로 한다.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세월은 계속 흐를 것이고, 나는 그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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