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74

도서관보다 공원

도서관에 가려고 나섰다. 책 두 권과 노트북을 챙겼다. 딸 유이도 함께다. 집에 있을 땐 몰랐는데 나와보니 햇살이 어찌나 따스하던지 몸이 나른 해지고, 마음이 녹아내린다.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어지럼증이 날 때까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쪽빛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만 같은 짙푸름이다. 집에서 도서관에 가는 길은 작은 다리를 건너 큰 도로변의 신호등을 지나 오르막길을 얼마 동안 씩씩 거리며 걸어야 한다. 신호를 기다리며 큰길에 섰다. 황금색 은행나무 뒤에서 햇살이 속삭인다. "오늘은 도서관보다는 공원에서 나랑 놀아!" 무거운 노트북이 들어있는 가방을 메고 도서관이 아닌 공원으로 갔다. "유이야! 햇살이 좋다. 공원으로 가자!" 본래 계획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쓴 후에 공원을 갈 생각이..

일상. 에세이 2024.11.10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

생각에 꼬리를 물게 하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그랬습니다. "스승이 필요한 당신에게"라는 첫 줄에서부터 질문을 주고 생각을 줍니다. 김지수 작가와 이어령 선생님의 죽음 혹은 삶에 관해 묻는 인터뷰 형식의 책입니다. 은유가 가득해서 곱씹어 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돌아보니 받은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선생님의 한마디가 책 전부를 말해주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죽음은 그 선물을 돌려주는 것이 아닐는지요. "사랑과 용서는 동의어라네." -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사랑이라는 단어도 크고, 용서라는 말도 큽니다. 사랑과 용서 사이에서 고민한 경험이 있습니다. 원래 사랑은 아름다워서 쉽다고 생각했고, 용서는 그릇이 크고, 내면의 힘이 강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어렵다고만 생각했었습니다. ..

일상. 에세이 2024.11.10

느리지만 느리지 않다

기분도 날씨를 따라가나 보다. 추워진 날씨만큼이나 마음에 한기가 느껴진다. 딱히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지나치게 생각이 많아서인 것 같기도 하고, 멘탈이 여지없이 나가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본래 자신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성격이다. 친한 친구 아니면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를 하거나 감정을 공유하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런 상황이 생기면 매번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런 내가 여러 사람과 소소한 내 일상을 공유했다. 그들도 나를 다 안다고 할 수 없고,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말이다.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색다른 경험에 흥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을 내보인 것에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미 지난 얘기가 되었건만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것은 내 작은 그릇 탓인가 싶다. 마치 길을 잃어 엄마를 놓친 아..

일상. 에세이 2024.11.06

즐거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겨울이 온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바빠진다. 월동을 준비하듯 집안 이곳저곳을 괜히 살피게 된다. 베란다에 쌓아둔 헌 옷가지를 버리면서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기타 세 개를 보았다. 두 개는 클래식 기타이고 하나는 일렉기타다. 먼지가 두껍게 내려앉도록 방치된 기타 주인에게 잔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온다. 꾹꾹 눌러 참으며 친절을 가장한 한마디를 했다." 유이야 저 기타는 언제쯤 다시 시작할 거니?" 속마음은 '저렇게 둘 거면 중고 시장에 팔자!'였다. 딸 유이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좋아했다. 자식의 공부 문제로 속을 끓이거나, 걱정을 달고 산다는 부모를 본 적이 있다. 다행히 공부만큼은 스스로 욕심을 부리며 하는 아이라서 고마울 때가 많았다. 오히려 부모인 내가 자식에 관한 공부 욕심이 없었다. "그만하면..

일상. 에세이 2024.11.06

요즘 다시 도시락을 싼다

딸을 위해 매일 도시락을 싸주던 때가 있었다. 둘째 재이가 편입 준비를 할 때였다. 턱걸이로 들어간 대학에 딸은 마음을 붙이지 못했다. 엄마인 내 처지에서는 반수한다고 할까, 봐 겁이 났다. 4년제에 가준 것만 해도 어디냐! 싶었다. 살살 달래가며 재이가 적응해 주기만을 바랐지만, 불안한 예상은 적중하고 말았다. 고3 때도 싸지 않았던 도시락을 꼬박 1년 동안 쌌고, 죽을 맛이었다. 직장까지 다니고 있던 차여서 더욱 힘들었다. 퇴근길마다 장을 봐야 했고, 집에 와서는 새우를 볶고, 감자를 조리고, 계란말이도 했다. 귀찮고 짜증이 났지만, 내색 못 했다.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기에 꾸역꾸역 도시락을 쌌던 것 같다. 은근히 사 먹으라고 부추겨도 보았지만 돈 없어서 싫다며 도시락을 고집하기에 ..

일상. 에세이 2024.11.01

진정한 글쓰기는 과정이다.

책은 쓰기와 연결된다. 진정한 독서의 완성은 읽고 나서 생각이나 감정을 기록하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을 끄적이는 일기가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글을 써보려 하니 좀 막막하다. 감정이나 경험을 끌어내 글로 표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나의 모든 순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일, 또한 오랜 시간 쌓아 올린 내공의 힘이다. 급한 마음 내려놓고, 내 속도에 맞추어 가야 하는 이유다. 아무리 완벽보다 완성에 의미를 두자고 마음먹지만 스스로 봐줄 만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의 이은대 작가님의 무료 특강을 찾았다. 다행히 퇴근 무렵에 강의가 생각났고, 다른 강의 일정이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글쓰기 강의를 우선으로 들었다. 생각났을 때 들어 두지 않으면, 속..

일상. 에세이 2024.10.30

기록의 힘

우연히 1년 전 오늘 블로그에 남겨진 글을 공유하는 네이버 소식을 보았다. 작년 올해와 같은 날에 무려 세 개의 글이 올려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1년 전에 경제 신문을 읽고 스크랩한 기사 하나가 어제의 경제신문에서 내가 같은 내용의 기사를 정리했다는 사실이 재미있었다. 바로 현대차 3분기 누적 실적에 관한 기사였는데 1년 사이에 신문기사 내용은 반대였다. 23년 10월 27일 1년 전 기사에서는 현대차 3분기 실적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는 발표 내용이었다. 그날 내가 요약한 기사에 의하면 기본적으로 전기차는 우상향 곡선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현대차 측은 생산을 줄일 생각이 없다고 하였고, 친환경차 판매를 확대할 것이라는 기사 내용이었다. 반면 24년 10월 25일 한국 경제 신문 ..

일상. 에세이 2024.10.27

주말 잘 보내는 법

직장인은 주말을 사랑한다. 근로자의 삶이 피곤해도 버틸 수 있는 것은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시간이라서다. '주말엔 분명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야.!' , '일주일을 보상받으며 게으른 왕처럼 지낼 거야.!' 하지만 현실은 '기분만 좋은 걸로.'에서 끝난다. 내 식구들은 평일에는 바쁜 엄마, 아내를 배려하느라고 이런저런 요구사항도 없고, 잔소리도 참아주지만 주말엔 한가할 거로 생각해서인지 자비가 사라진다. " 엄마! 주문한 채소가 많아.! 다듬어서 냉장고에 나누어서 넣지 않으면 시들해져." "유이 엄마! 세탁기 두 번은 돌려야겠어." " 아이고! 지금 좀 바쁜데?" 대신해 주면 안 될까?" "주말만이라도 엄마가 하는 걸로 땅! 땅! 땅!" 유구무언이다. 주말에 맞춰서 주문한 식재료이건만 여전히 채소..

일상. 에세이 2024.10.26

내가 매일 충실하게 하는 것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삶의 중심을 나에게 두면서부터 매일 걷고, 읽고, 쓴다. 직장인이자 가정주부지만 시간 탓하는 못난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일과 가정도 소중하고, 나의 성장 발전도 중요하기에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은 핑계다. 단 몇 줄이라도 읽고, 한 줄이라도 적을 것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책은 새로운 세상을 여는 문이며, 그 세상을 보는 눈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독서를 통해 얻어지는 감정은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이어졌다. 감정이나 생각을 쓰고 싶어지는 것은 물이 흐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럽다. 도서 후기를 주로 쓰던 내가 일상의 생각과 경험을 쓰기 시작했다.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었다.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누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독서와 글쓰기는 나를..

일상. 에세이 2024.10.26

진정한 사랑

"형님! 어머님 식사는 잘하시지요?" "원래 소식하시는 분이라…. 내가 입맛에 맞게 해드리지도 못하기도 하고…." 전화기 너머의 형님 목소리가 기운이 없다. 형님 나이 60이 넘었지만, 시어머님을 모시고 산다. 말할 수 없는 미안함과 죄송한 마음 때문에 전화를 자주 하기도 염치없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만 30년 넘게 근무하던 형님은 몇 해 전에 퇴임했다. 정년퇴직하고 나면 남들은 여행도 다니고 인생 2막을 잘도 시작하던데 내 형님은 퇴직하고 1년 만에 몹쓸 병만 얻었다. 깐깐한 남편 눈치 보느라 여행 한 번 마음 편히 다니지도 못했고, 밖에서 사 먹는 음식을 싫어하는 아주버님 때문에 바쁜 직장생활에도 불구하고 외식도 안 하고 살았다. 밥은 꼭 냄비로 지은 밥만 드시는 아주버님이라서 형님 집에 가면 찰기 ..

일상. 에세이 2024.1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