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색채가 아름답다. 그새 붉어진 나뭇잎이 놀이터 나온 꼬마의 머리 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발밑으로 떨어진다. 까르르! 웃는 아이 모습이 가을 수채화처럼 맑다.
"너는 세상이 평면이냐? 원근법도 모르냐? " 중학교 2학년 미술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다. 미술 선생님이라서 수업 시간에 당연하게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듣고 잊어버릴 수도 있었을 말이 지금껏 잊히지 않고 가슴 한편에 남아있다. 꿈이라는 것과 연결되어서 그렇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었다. 누구에게 배워본 적은 없었지만, 미술 시간이 좋았다. 적어도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4절지 스케치북에 4B연필로 내 맘대로 이것저것 그리며 놀았다.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때였다.
가을 풍경화 그림이었으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반 아이들 모두 비슷한 가을풍경을 그렸다. 완성된 그림을 칠판 앞에 세워놓고 한 명씩 앞으로 나가서 평을 받았다. 나는 아주 못 그린 그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무슨 말을 들을지 기대가 컸다.
뜻밖의 선생님 평가에 얼굴이 빨개지고 창피한 생각에 어쩔 줄 모르고 서 있었다. 이름을 부르며 자리에 돌아가 앉으라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친구들보다 잘 그렸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친구들은 "색이 두껍다! 물 더 섞어라!" 정도였지만 내 그림은 입체감이 없고, 거리감이 없다는 말에 제대로 상처받았다.
그때부터였다. '아! 틀렸어. 나는 그림에 소질이 없어.' 자신감을 잃고 그림에 대한 꿈을 멀리 던져 버렸다. 그림과 관련된 것은 외면하고 살았다. 머리카락이 희끗희끗 해지는 나이가 되자 그때가 떠오르며 후회가 되었다. 왜 쉽게 포기했을까. 선생님이 어떤 마음으로 그리 말했는지 물어본 적도 없었으면서 말 한마디에 속 좁게 굴었단 생각이 들었다. 사춘기였거나, 포기할 만큼 꿈이 절실하지 않았거나 둘 중의 하나였나 보다.
몇 년 전 직장을 잠시 쉰 적이 있었다. 아이들과 남편은 학교와 직장에 바빴다. 집에서 혼자 무료했다. 주민센터 자치회에서 그림 수업을 개설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편안하게 취미 생활쯤으로 하면 되는 거였는데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며 몇 날 며칠을 망설였다. 같은 말을 또 들을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용기를 내어 신청했다. 단단히 각오해서인지 꽤 즐겁게 그림 수업받았고, 조촐하게나마 전시회도 경험했다. 지역 자치구 내에서 하는 이벤트 행사에서 다른 작품들과 함께 내 작품도 세 개가 전시됐다. 작은 액자였지만 그림 선생님이 수업견본으로 쓰고 싶다며 한 작품을 줄 수 있겠냐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비로소 괜찮을 수 있었다. 만약 과거의 말 한마디에 갇혀 그림 배우기를 포기했다면 자존감이 회복되지 않은 채 살았을지도 모른다. 사는 것에 문제는 없겠지만 내게는 중요하다. 선택은 두려움과 함께 오지만 설렘도 같이 온다. 두렵기만 하고 설레지 않는다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고 했다. 수채화 같은 가을 날씨에 두렵고 설레는 것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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