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 16

아주 보통의 하루,그래서 더 특별한

수요일 점심엔 보통 볶음밥이나 카레, 짜장밥 중의 하나다. 오늘은 볶음밥이다.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 볶음밥에 순두부 호박국을 먹었다. 든든하게 먹고 휴식을 위해 따뜻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직장에서의 점심은 고른 영양과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해 주어서 감사하다. 일과 중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다. 창밖을 보니 눈이 쌓이고 있다. 첫눈치고 폭설이다. 아침에 남편은 회사에서 눈 치울 일이 걱정이라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처럼 나가서 뛰놀고 싶다. 출근길에 눈 쌓인 나무를 보았다. 아직 단풍이 그대로다. 울긋불긋 낙엽이 아직인데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하나둘 커피를 들고 휴게실에 모인다. 커피 향이 퍼진다. 카페인을 거부하는 내 몸은 따뜻한 둥굴레차를 좋..

일상. 에세이 2024.11.28

뜻밖의 소식

아침부터 마음이 심란했다. 몇 해 전 마련한 집의 전세 만기가 돌아오고 있었다. 전세 대출이 어려운 요즘이라서 그런지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마음이 초조하던 차에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문제는 워낙 오래된 집이라 수리가 필요했다. 전체 인테리어를 해달라고 했다. 물가가 만만찮은 요즘 전채 인테리어비가 장난 아니게 비쌀 터다. 현재의 세입자를 보내줘야 하는 기한은 빠듯한데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전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수리해 주는 조건으로 하고 싶어서 이견 조율을 해보려 했으나 잘되지 않았다. 퇴근 후에 계약을 위해 부동산으로 가는 발걸음이 편하지 않다. 집주인이 이런 불편한 계약을 해도 되는 건가 싶었지만 일부 계약금도 받아버린 상태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좋은 마음..

일상. 에세이 2024.11.27

호사다마에서 배우다

호사다마다. 흔히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한다. 좋은 일에 방해를 많이 받는다는 의미다. 호사다마를 제대로 경험했다. 며칠 전 직장에서 업무에 정신없을 때 그간 준비해 왔던 공저 책이 드디어 예약 판매에 들어갔다는 문자를 받았다. 작은 시작이 결실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여행 중이었던 남편이 돌아와 저녁을 먹고 이런저런 여행담을 나누었다. 직장 동료들과 갔던 여행이 만족스러웠던가 보다. 모처럼 편안하고 밝은 얼굴을 뒤로 하고 노트북 앞에 앉을 때였다."왜 그러지? 명치끝이 너무 아픈데?""체했나 봐. 손끝을 따보면 어때?"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자리에 주저앉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벽시계를 올려다보니 밤 9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조금만 견뎌보겠다고 했지만 살면서 그런 모습을 본 적이 없기에 ..

일상. 에세이 2024.11.23

모든 순간마다 선택은 옳았다

책이 나왔습니다. 폭염이 한창이던 8월 중순에 원고 첫 페이지 첫 줄을 썼던 걸로 기억합니다. 많이도 망설였던 시작이었습니다. 처음엔 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 않았기에 고민도 없었지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신 백란현 작가님이 계셨습니다. 두려움과 설렘의 마음으로 공저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전자책 과정을 경험한 탓에 책 쓰기가 고되고 힘든 일인지 압니다. 이번엔 공저이지만 종이책입니다. 내 선택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고, 책임감이 느껴졌지요. 초고 날짜, 퇴고 날짜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처음 초고를 들여다보았을 때가 생각납니다. 과연 책으로 나올 수 있을까 싶었지요. 수정할수록 내용은 산으로 가는 것 같고, 미로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퇴고 지옥이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일상. 에세이 2024.11.22

혼자가 아닌 함께라서 다행이다

남편이 여행 중이다. 회사의 직원들과 여행계를 만들어서 일 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을 간다. 여행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흔쾌히 다녀오라고 말해주고, 많지는 않아도 용돈도 챙겨 주었다. 퇴근 후 집에 오면 남편은 여행 사진과 함께 간단한 안부 문자를 보내온다. 눈앞에서 봤을 땐 몰랐는데 사진으로 얼굴을 보니 몇 년 사이에 부쩍 늙었다. 얼마 전 협심증으로 병원 신세를 져서 그런지 더욱 안쓰럽게 보인다. 활짝 웃으면 보기 좋을 텐데... .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에 마음이 덜 좋다. 좋아하는 여행 중인데 왜 표정이 밝지 않냐고 물으니, 대답이 애매했는지 아무 말이 없다. 남편의 얼굴에는 우리가 함께 걸어온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 보인다.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던가. 젊었을 때..

일상. 에세이 2024.11.20

딸의 시간

둘째가 요즘 취업 준비로 정신이 없다. 근로자의 삶을 준비하는 것이 엄마는 내키지 않지만 별수 없다. 평범한 가정에서 공부도 평범했고, 생각도 무난하다 보니 대학을 졸업했으면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밤새 자기소개서를 쓰고, 예상 면접 질문지를 뽑아 거울을 보며 연습하는 모습이 정말이지 내가 원하던 모습은 아니다. 생산자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사고를 달리 키워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죄책감이 드는 걸까. 일찍이 깨지 못한 부모 탓 같기만 하다. 어린아이의 사고는 스펀지 같아서 주는 대로 흡수한다는데 부모가 방향성을 도왔다면 좋았을 것같다. 부드러운 찰흙과도 같아서 손길이 빚는 대로 모양이 만들어진다는데 잘 빚어 볼 걸 그랬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른 방식의 육아와 아이 교육을 선택했을..

일상. 에세이 2024.11.19

글을 쓴다는 것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땐 쓰고 싶은 것이 많았다. 일기와 글쓰기를 구분 못 할 만큼 우매했지만, 생각이 많으면 오히려 걸림돌이 될 것 같았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쓰기로 했다. 성장할 때의 결핍은 나의 약점이었다. 엄마와 딸 사이는 애틋하기 마련이라지만 사춘기 시절 우리 사이는 다정하지 못했다. 마음을 읽어 주지 않는 엄마에게 늘 불만을 달고 살았고, 미움이 있었다. 철이 들면서 엄마를 조금씩 이해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자식 여럿을 키우다 보면 손이 가지 않는 자식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내 앞가림 잘해서 신경을 덜 쓴 걸 거야.'라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언젠가는 엄마와의 대화를 통해 감정을 털어내고 홀가분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삶은 예단이 안 된다. 마음의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

일상. 에세이 2024.11.18

글은 관상이고 골상이고 심상이다.

얼마 전에 독서 모임 선생님으로부터 관상과 골상과 심상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글쓰기와 비추어 생각해 보니 너무나 공감되는 말이다. 글의 출처를 찾아보니 송나라 재상인 법문 공이 관직에 오르기 전에 찾아갔던 관상쟁이에게서 들었던 말이라고 한다. (출처 관상 불여 골 상 골상 불 여심상 - 觀相不如骨相 骨相不如心相 : 네이버 블로그) 관상(얼굴상)은 골상(뼈상) 보다 못하고, 골상은 심상(마음상) 보다 못하다송나라의 관상가 송나라 법문 공이 어느 날 관상쟁이를 찾아갔다. " 내가 재상이 될 상인가?" "당신은 재상이 될 수는 없겠습니다." 며칠 후 다시 법문공은 관상쟁이를 다시 찾았다. "내가 의원은 될 수 있겠는가?" "왜 의원이 되려 합니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지기 위해 재상이 되고 싶었으나..

일상. 에세이 2024.11.17

변화와 익숙함의 사이에서

AI와 디지털 기술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휙휙! 바뀌는 요즘 사회에 멀미 같은 어지럼증이 날 정도다. 변화를 좋아 좋아한다고 생각했고,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요즘의 시대에 얼추 맞추어 사는 줄 알았다. 착각이었나 보다. 변화보다는 익숙함에 안정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어제는 온라인에서 캔바 나눔 강의를 들었다. SNS를 하다 보면 캔바나 미리 캔버스 같은 디자인 플랫폼을 자연스럽게 접한다. 디자인 전문가가 아니어도 쉽고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초보지만 대략의 기능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강의를 들으면서 든 생각은 "아니 이렇게 좋은 기능들이 있었다고? 난 그동안 뭘 한 거지? 아주 기본 기능만 주야장천 쓰고 있었네!" 마음만 먹으면 알 수 있는 기능을 배워보려는 의지..

일상. 에세이 2024.11.16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라틴어를 전혀 모르는 내가 요즘 한동일 작가의 "라틴어 수업"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배우 로빈 윌리엄스( 존 키팅 선생님)가 외쳤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이 사실은 라틴어 시의 한 구절이었다는 것도 알았다. "Ad Astra Per Aspera (고난을 넘어 별을 향해)" 라틴어 명언이다. 처음엔 "힘내자"의 의미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내 삶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에 이르자 이 문장이 특별해졌다. 매일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지만, 저녁 늦은 시간까지도 쓰지 못하는 날이 있다. 오늘도 그런 날 중의 하루다. 남편은 내가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것에 걱정을 내비쳤다. 자신은 글은 모르지만 글 쓰는 것으로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침 출근길을 차로 동행해 주면..

일상. 에세이 202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