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우리 작은 며느리 보고 싶었다

빛나는 오늘 2024. 12. 23. 22:11

 
어머님께 따뜻한 외투라도 사드리고 싶었는데 가격표를 보고 망설이기만 하다가 돌아왔다. 체격이 작으신 어머님에게 맞는 옷을 고르기란 늘 쉽지 않다. 나이에 걸맞은 색상과 디자인이면서 최소 사이즈여야 하기 때문이다.
 
옷을 사드린 적이 많지는 않지만, 어머님은 내가 사드린 옷을 좋아하고 오래 입으신다. 값비싼 옷은 아니었지만 딱 맞는 사이즈였기에 그러셨으리라.
 
손위 동서인 형님도 어머님께 자주 옷을 사드린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보다 나은 형님은 브랜드 옷은 물론 값나가는 가방과 신발도 사드리곤 한다. 하지만 사이즈 찾기가 어려웠는지 형님이 사드린 옷은 늘 크다고 말씀하셨다.
 
반대로 나는 동네 시장을 돌며 나이 지긋한 분들이 입을만한 것으로 고른다. 시장 구석구석을 뒤져서라도 어머님의 취향에 맞는 색상과 사이즈를 기어코 찾아내곤 했다.
 
"네 형님이 사준 옷은 좋긴 한데 너무 커서 안 입어지더라"라는 말씀을 들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일평생 직장에 매인 몸이었던 형님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사드렸을 터다. 빠듯한 형편 탓을 했던 나는 자주는 못 사드렸지만 사이즈를 잘 맞춘 덕에 매번 좋아해 주셨다.
 
주말에 어머님을 뵈러 형님 댁에 갔다. 한동안 찾아뵙지 못해서인지 두 손을 꼭 잡고 반가워하신다. "우리 작은며느리 보고 싶었다."라며 활짝 웃어주시니 자주 찾아뵙지 못하는 죄송한 마음이 더했다. 휴일 이른 아침 시간이지만 금방이라도 외출하실 것처럼 단정한 차림으로 앉아 계셨다.
 
얼굴색이 좋으시고 표정도 밝아 보이셔서 내심 마음이 좋았다. 당신의 옆자리에 자리를 내어주며 아무 데도 가지 말라는 듯 내 두 손을 잡고서 말씀하신다.
 
" 나는 오늘 가나 내일 가나 이상해할 것이 없어.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애들 잘 건사해라. 너희 시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네가 이렇게 고생 안 할 텐데... . 사느라고 애쓴다. 네가."
 
남편에게도 이런 위로의 말을 들어 본 적이 있었든가 싶다. 울컥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꽉 잡은 손등만 토닥였다. 부모란 그런 건가 보다. 평생 모든 것을 다 내어주고도 더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신다. 못내 아파하시는 마음을 자식을 키우는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망설임 끝에 사지 못한 외투가 자꾸 떠올랐다. 값비싼 옷이 아니어도, 어머님 체격에 꼭 맞는 옷 한 벌 사드렸더라면 "너는 어쩌면 그렇게 딱 맞는 옷을 잘 샀냐!" 하며 좋아하셨을 텐데... . 어머님께 꼭 맞는 옷을 고르기 위해 온 시장을 누비던 그 시간이 그나마 어머님께 드린 값진 선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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