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하고 결혼문화도 달라졌다. 주례사 대신 서로의 약속을 낭독하고, 하객들과 함께 즐기는 파티다. "그대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면 응원할 것이고, 그대가 무엇을 하던 지지할 것이다." 신랑과 신부의 떨리는 어깨만이 이 순간의 엄숙함을 말해준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 부부의 풋풋함이다.
둘째 조카의 결혼식이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애간장을 태웠던 녀석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숨이 막히게 더웠던 한 여름에 태어났고, 집으로 온 사흘 만에 다시 병원에서 생사를 다퉜다. 폭염 속 탈수였다. 의사는 살 수 있는 확률이 딱 반이라고 겁을 주었다. 반의 확률을 이겨낸 그 아이가, 이제는 어엿한 한 가정을 이루는 신랑이 되었다.
오늘 저렇게 예쁜 신부를 맞아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의 장난꾸러기 모습, 사춘기의 방황까지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갓난아이부터 30년을 지켜본 이모 마음이 이리 벅차오르는데, 언니와 형부의 마음은 어떨까. 눈이 시큰해진다.
눈처럼 하얀 겨울 신부의 모습이 눈부시다. 연예인도 울고 갈 신랑의 외모도 화제다. 그야말로 선남선녀의 결혼이다. 지켜보던 딸 재이는 미래 자기 모습을 그려 보았나 보다." 엄마 내가 결혼한다면 결혼식을 생략할까, 봐. 이렇게 짧은 결혼식을 위해 큰돈을 쓰는 게 낭비 같아."라고 한다.
젠지 세대(1990년대 중반에서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세대) 다운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신부의 행복한 표정을 봐. 그만한 가치가 있어 보이지 않니?" 결혼식은 단순한 의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축복하는 소중한 순간임을 말해주고 싶었다. 한편으론 실용적인 딸의 말에 '우리 딸이 마냥 어리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랑의 아버지인 형부의 축사가 마음에 와닿는다.
" 서로의 어깨를 빌려주며 작은 일상도 감사하게 여기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거라…."
쉽게 결혼하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이다.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닌 미련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사랑의 본질은 변함없으리라. 문득 나의 결혼생활을 돌아본다. 시간은 흘러도 그날의 설렘과 약속은 또렷이 남아 있다. 단지 표현의 방식은 달라졌지만, 부부의 신의와 마음만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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