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이라 여겼던 순간들이 감사한 순간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곤 한다.
"수리비는 18만 2천 원 정도 나오겠습니다."
"네에? 아니 그렇게나 많이…."
"수리 맡기시겠어요?"
"... . 달리 방법이 없는 거죠?"
"네. 없습니다. 맡기시겠다면 부품 있나 봐 드릴게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 부품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건가? 생각도 하기 싫다.
" 네. 수리해 주세요. 아. 배터리도 이상 있나 봐주세요. 충전하면 하루가 채 못 가요."
평범한 금요일이지만 기분은 벌써 주말이었다. 코끝은 시리고, 해야 할 업무는 많았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콧노래까지 부르며 출근을 서둘렀다. '설마 늦은 건 아니겠지!' 휴대전화 시간을 들여다본 순간. 붕! 날랐다가 곤두박질했다. 주차장의 턱선을 못 본 것이다.
맨땅에 엎드린 채 스케이트 타듯이 앞으로 쓸려갔다. 오른손에 전화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꼭 쥔 채로. 휴대전화 왼쪽 구석이 좌르르 갈려 나가고 말았다. 아픈 것보다 휴대전화의 생명에만 관심이 갔다. 겉으론 멀쩡했다. 무릎이 아프고 피가 나는지 옷이 축축해 왔다. 무릎은 안중에도 없고 휴대전화 상태부터 살폈다. 절반을 중심으로 아래는 작동이 되고, 위쪽은 터치가 먹히지 않았다. 무릎 양쪽에 밴드 하나씩 붙이고, 왼쪽 옷소매 끝이 찢어진 거 빼고는 달리 다친 곳은 없다.
퇴근하면서 장도 봐야 하는데…. 모바일 결제 외는 결제 수단이 없어서 말이다. 다행히 기후 동행 카드는 있으니, 집엔 갈 수 있다. 카톡 내용 빼고는 딱히 필요한 것도 아닌 상황이건만 고구마 백 개는 먹은 듯 하루 종일 답답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건드려 보고 앱을 열어 보려고 용쓰다가 진이 빠진 채로 하루가 끝났다. 깃털 같던 금요일 아침이 오후가 되니 물먹은 솜이 됐다.
아침에 출근 준비하면서 긍정 확언과 선불 감사를 했다. 거울 속의 내 모습을 보면서 하이 파이브도 해주었었다. 그런데 어째 이런 일이…. 내 나이에 잘못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생긴다. 동료 말대로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이고 감사하다.
지난여름에, 침대에서 일어나시다가 팔 골절을 입은 어머님은 다섯 달이나 지났는데도 집안일을 못 하시고. 딸 유이 역시 운동하다가 넘어져 발목 골절을 당했을 때 오랜 시간 동안 일상생활의 제약을 받았다. 아직도 많이 걸은 날은 얼음찜질을 해줘야 하고 외출할 땐 발목 보호대를 차고 나간다.
그러니 휴대전화 수리비로 끝난 것이 정말 감사하다. 인제야 아침의 긍정 확언과 선불 감사 효과가 실감 난다. 무릎 찰과상 정도가 감사하다. 퇴근길에 남편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병원 갈 일 만들지 않아서 잘했단다. 맛있는 저녁을 사라 한다. 나 대신 휴대전화가 병원 가게 생겼으니 비싼 건 못 사주겠다. 하고 해물칼국수와 만두로 행운을 자축했다.
작은 불행 속에서도 감사할 거리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살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과 마주한다. 사건을 바라보는 작은 시선 하나가 많은 것들을 바꾼다. 긍정의 마음가짐이 그것이다. 때론 우리가 불행이라 여기는 것이 더 큰 불행을 막아주는 방패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불행이 행운으로 바뀌는 감사의 가치를 알고 나면 삶은 더욱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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