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그리움과 후회

빛나는 오늘 2024. 12. 17. 22:28

 


아버지의 기일이다.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늘 그랬듯이 우리 막내딸 왔냐며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신다. 엄마도 아버지 옆에서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여섯 남매가 한자리에 모인 걸 보니 두 분 다 좋은 신가 보다. 고기를 올리고 과일과 떡, 전과 탕국을 정성스레 올리는 오빠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덧없는 마음이 밀려온다. 생전에도 이렇게 푸짐하게 대접해 드리지 못했는데, 이 많은 음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병원 생활을 하셨을 때, 어린 두 아이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가곤 했다. 입맛을 잃은 아버지였지만 막내딸의 정성을 봐서인지 억지로 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한번은 장어가 몸보신에는 그만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무작정 살아 있는 장어를 샀다. 장어탕을 할 심산이었다. 사실 지금 같으면 장어 맛집에서 사드리는 것이 백번 낳은 선택이라는 걸 알겠지만, 내 손으로 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었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끓는 물 안에서 장어가 기절하기를 바랐지만, 기절은 내가 할 판이었다. 뚜껑을 밀어내고 튀어나와 부엌 바닥에서 펄떡대는 통에 어찌할 바를 몰라 울어버렸다.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든지 수습해야 했다. 고무장갑을 끼고 바닥에서 파닥이는 장어를 잡아서 다시 넣었다. 그 감촉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미끄럽고, 손안에서 꿈틀대는 유쾌하지않은 느낌을. 아무리 힘을 줘도 떨어뜨릴 것 같은 무서움에 온몸을 떨었다. 아픈 아버지 때문인지 다룰 줄 모르는 장어 때문인지 눈물이 하염없이 났다. 또다시 탈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찌나 힘을 주어 뚜껑을 눌렀던지 팔이 저릿저릿했다.
 
솜씨 없는 내가 맛있게 끓였을 리가 만무했다. 퉁퉁 부은 눈을 하고서는 저녁때가 다 돼서야 병원으로 가져갈 수 있었다.
" 아버지 맛이 없어도 기운 차리게 드셔야 해요." 아침부터 고생했을 딸의 정성을 생각했는지 "아니다. 잘 끓여서 먹을 만하다."라고 하셨지만, 몇 술 뜨고는 "나중에 먹으마" 이내 숟가락을 내려놓으셨다.
 
'살아 계셨을 때 자주 해드렸어야 했는데.' 후회만 한가득하다. 오빠는 장남의 책임으로 제사를 모실 테지만 나는 마음이 좋기는커녕 못된 아이처럼 입만 나온다. 생신상도 아니고 제사상을 푸짐하게 차린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마는 그래도 우리 여섯 남매가 모여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아버지도 그걸 더 기뻐하실 것 같다.
 
후회 없이 사랑을 표현하고, 작은 일상도 함께 나누는 것. 오늘따라 그 소중함이 더욱 깊이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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