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를 홀린 듯 보고 있었다. 한 아이가 내게 어떤 선물을 받고 싶냐고 묻는다. 어른도 산타 선물을 받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행복을 받고 싶단다."라고 대답하자 아이는
"산타 할아버지는 그런 건 안 줘요."라고 말한다.
"정말? 난 꼭 받고 싶은데."
"내가 대신 줄게요. 자요!" 하며 가슴에 손을 대며 주는 시늉을 한다.
행복을 받고 싶다는 내 말에 딸 유이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그 엄마에 그 딸이었구나!' 인제야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해마다 진땀이 났다.
"산타 할아버지께 뭐 받고 싶니?" 하고 서너 살 유이에게 물으면 '별'이라고 대답했다. 귀여워서 웃고 넘겼지만, 진짜로 하늘에 있는 별을 원했다.
다음 해에는 마법 지팡이를 달라고 했다. 장난감이 아닌 영화에서처럼 마법을 부리는 지팡이 말이다. 꼭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꿈에 부풀어 있기까지 했다. 그 역시 뾰족한 수가 없으니, 문구점에서 파는 장난감 마법 지팡이를 사주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어린아이들에겐 장난감만 줄 수 있다고 말해주어야 했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매번 엉뚱한 선물을 원했던 유이. 산타 할아버지는 마음속 말을 들을 수 있어서 말하지 않아도 바라는 선물을 준다고 믿었다. 끝내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해주지 않기도 했다. 짐작만으로 선물을 주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 딸은 '업어주는 똘똘이'를 원했는데 '목욕하는 똘똘이'를 주었다. 산타 할아버지가 바쁘셔서 선물이 바뀌었나 보다며 얼버무렸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유이와 어린 시절의 산타 선물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받고 싶은 선물을 말하지 않아서 애먹었던 심정을 털어놓자, 딸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어렸을 땐 진짜 산타 할아버지가 있는 줄 알았지만, 친구들은 산타 할아버지는 없는 거라고 했어. 그래서 산타 할아버지가 정말 있는지 알고 싶었고, 있다면 선물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받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지." 하하하.
산타 할아버지에게 행복을 받고 싶다고 말한 건 내 진심이었다. 북극에 사는 흰 수염의 할아버지가 아니어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있다면 그게 바로 산타다. 어린 딸이 별 이나 마법 지팡이 같은 황당한 선물을 바랐을 때 '왜 저럴까.'라고 했지만, 반백의 내가 네 다섯 살 적의 딸이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음을 인제야 깨닫는다.
아이에겐 별과 마법 지팡이가 행복이었을 것이다. 나도 행복한 꿈을 꾼다. 건강하고 부자가 되는 꿈, 퇴직 이후에 글을 쓰고 책을 내는 꿈이 그것이다. 행복은 물질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이 때로 비현실적일지라도, 그 속에 담긴 꿈은 소중하다. 아이의 순수한 바람처럼.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일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책상 밑 하이틴 소설 (2) | 2024.12.12 |
---|---|
겨울이 오면 그리운 아버지 (0) | 2024.12.10 |
금손이 아니어도 괜찮아 (0) | 2024.12.08 |
안되는 것도 되게 (2) | 2024.12.07 |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1) | 2024.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