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금손이 아니어도 괜찮아

빛나는 오늘 2024. 12. 8. 19:43

 
조용한 일요일 아침이다. 밤사이 탁해진 공기를 환기하려고 창문을 열었다. 찬바람이 훅 끼쳐온다. 찬 공기가 몸의 구석구석을 깨운다. 특별히 좋지도 않고, 나쁠 것도 없는 아침 살짝 우울하다. 이런 날도 있기 마련이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짙푸른 바다다.
 
창문을 닫고 다시 이불 속을 파고들었다.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는다. 안 되겠다 싶어 일어나 책을 폈다. 산란한 마음에 내용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기분은 뭐지?' 헛헛함 같기도, 허기진 것 같기도 한 배고픔이 밀려온다.
 
냉장고를 열었다. 먹을만한 재료가 없다. 주말에 즉석떡볶이를 해준다며 딸이 사놓았던 콩나물과 어묵 한 봉지가 다다. 간식인 줄 알고 사 온 맥스* 핑크 소시지가 보인다. 얼린 대파도 있다. 보이는 대로 때려 넣고 잡탕찌개를 끓였다. 휴일을 온전히 침대에서만 보내는 아이들을 불렀다.
 
"얘들아, 부대찌개야. 먹어봐."
떨떠름한 것이 기대감이라곤 일도 없다는 표정이다. 둘째가 맛을 보더니 "우와~"라고 한다. 갑자기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정말? 맛있어? 성공이다." 손뼉을 치며 웃는 내게 얄짤없이 말한다.
"우리 엄마 음식 솜씨는 한결같아." 그러면 그렇지 한결같다는 말은 칭찬이 아니다.
"눈을 감고 먹어도 아! 우리 엄마가 했구나! 하고 알 수 있어."
"무슨 말이야?"
"어떻게 해도 비슷한 맛이 있거든."
받아들이기 싫지만, 결론은 실패다.
 


일요일 가족의 끼니를 배달의** 이 해결해 줬다. 배달 피자만도 못한 내 부대찌개는 그렇게 사라졌다. 친정엄마는 동네에서도 알아주는 금손이었는데 딸인 나는 똥 손이다. 남편은 말한다. 왜 장모님을 닮지 못했냐고. 아니. 나라고 닮고 싶지 않았겠냐고.


 
하루가 완벽하지는 못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기분이 침울해서 책을 읽을 수 없었고, 요리도 실패했다. 삶의 한 부분이다. 엄마의 금손을 물려받았더라면 한 끼가 행복했겠지만, 나만의 방식으로 가족을 사랑하고 돌보려고 노력했다.
 
각자의 삶에는 다른 색깔이 있기 마련이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한 음식 솜씨가 내 전부는 아니다. 존재 자체로 가치 있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산책하러 가자. 얘들아!"
"추운데 엄마 괜찮겠어?"
"당연히 괜찮지. 오는 길에 붕어빵. 콜?"
"콜!"
어제의 누군가에는 절실했던 오늘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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