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인생은 여행이다

빛나는 오늘 2024. 12. 4. 22:34

 
뜻밖의 하루가 생겼다. 계획에 없던 하루라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떻게 하루를 보낼지 설레기도 한다. 직장에서 연차를 냈었는데 의도치 않게 날짜가 바뀌었다. 하루라는 여유가 생겼다.
 
색다른 하루를 보내볼까? 마음이 솔깃해진다. 요즘 젊은 아가씨들답지 않게 멋 낼 줄 모르는 유이에게 이쁜 털 코트 하나 장만해 주러 쇼핑할까. 아니면 조용한 카페에 가서 따뜻한 대추차와 함께 느긋한 휴식을 만끽해 볼까.
 
마음만 부푼 걸로 끝났다. 밀린 집안일을 간단히 정리만 하려 했는데 일이 커졌다. 정리하다 보니 버릴 물건들이 끝없이 나온다. 어찌 된 건지 옷은 버렸는데도 마루에 또 한가득 쌓인다. 버려도 버릴 게 생긴다는 건 다시 채웠기 때문이겠지.
 
사용하지 않는 운동기구들, 입지 않는 옷들, 쓰지 않는 그릇들을 보니 돈을 규모 있게 쓰지 못하는 사람 같아 자책하는 마음이 올라온다. 물건 하나라도 반들반들 닦고 고쳐서 정갈하게 쓰라 했던 김승호 회장님의 질책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결국 쇼핑은커녕 혼자만의 따뜻한 차 한 잔의 시간도 물 건너갔다. '여유 있게 책을 읽고 글도 한가롭게 쓸 수 있어서 좋구나!' 쪽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버리고 비우는 경험에서 문득 인생이 여행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가면 짐을 싸게 마련이다. 꼭 필요한 것들만 챙긴다. 짧은 여행에도 가방을 여러 개 준비할 만큼 짐을 챙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간단한 몇 가지만 챙기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떠한가.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이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버리고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면서.
 
버린 물건을 새로 사는 나쁜 습관이 있고, 좋은 것을 갖고 싶은 욕심도 있다. 평소 같으면 업무에 한창일 평일 낮이다. 조용한 집에서 청소하다 보니 생각과 감정이 정리가 된다. 나에게 있어 버려야 할 것들은 단순히 물건만 있는 게 아니다. 해야 할 것과 멈춰야 할 것들, 버려야 할 것들에 생각이 오래도록 머문다.
 
내면의 목소리에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을 비우고, 필요 없이 붙잡고 있는 관계를 버려야 한다. 필요한 것만 넣는 여행 가방처럼. 버리지 못하고 껴안고 있으니 채울 공간이 없는 것이다. 비우고 버리자고 다짐하지만 쉽지 않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채우고 싶거든 비우고. 좋은 것을 가지고 싶거든 버리라고 말해 준다.
 
인생은 여행이다. 여행 가방이 단출하고 비어있을수록 그 지역 혹은 그 나라의 특별한 무언가를 담아올 수 있다. 버릴 게 없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청소라는 과정을 통해 생기는 것처럼 내게도 정리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이라는 여행을 잘하고 있는걸까. 목적지에 취해서 값진 여정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을 읽으려고 글을 썼지만, 요즘은 글을 쓰기 위해 책을 읽는 것으로 바뀌었다. 물고기는 지느러미와 꼬리로 속도와 방향을 조절한다고 한다. 균형으로 생존력을 높인다. 잘 가고 있는 여행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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