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내리사랑이다

빛나는 오늘 2024. 12. 3. 21:25

 
내리사랑이다.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의 반의반도 돌려주지 못하는 자식으로 산다. 백 세 시대를 넘어 백이십 세 시대면 뭐 하겠는가. 늙어가는 일이 아름다울 때, 노후가 행복할 때 나이도 빛나는 법이다. 어머님은 내게 30년 가까이 비바람을 막아준 우산이 되어주었고, 따뜻한 해가 돼주었다.
 
유한한 세월은 이제 어머님을 어린아이로 돌려놓았다. 배운 대로 어머님께 우산이 되어주고 따스한 해가 돼주어야 하지만 뒤바뀐 사랑을 어머님도 나도 어색해한다. 여전히 어머님은 하나라도 주고 싶어 하고 나는 받는 것에 익숙하다.
 
"사느라고 애쓴다. 자주 올 것 없이 애들이나 잘 챙겨라. 애들은 같이 안 왔냐. 보고 싶다." 안고 뛰어도 될 만큼 거죽만 남은 몸으로 떨고 계신다. 여태껏 자식 앞에서 보인 적 없던 눈물이 쉴 새 없이 주름 사이를 타고 내린다.
 
결혼생활과 동시에 어머님은 내 살림 하나를 더 맡은 거나 다름없었다.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 중 어느 것 하나 어머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가까운 거리도 아니지만 냉동 택배와 일반 택배가 사흘이 멀다 않고 문밖에 있었다. 채소는 물론 철 따라 종류별로 김치를 보내셨다.
 
봄에는 각종 채소와 배추김치, 깍두기, 파김치를 수시로 보내시고, 여름에는 열무김치, 깻잎 김치, 쪽파김치를 가을에는 배추김치, 고구마순 김치, 나박김치, 파김치를, 겨울에는 김장 김치, 갓김치, 동치미를. 김치뿐만 아니라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만큼 제철에 나는 모든 음식을 반찬으로 만들어 보내주셨다. 고춧가루, 된장, 고추장, 간장, 마늘, 생강, 양파, 참기름 들기름은 말할 것도 없다.
 
경제적으로 수입이 없어도 어머님이 주신 것만 가지고도 생활이 가능할 정도였다. 그러니 자식 키우고 공부시키며 집도 장만하고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머님이 쏟은 정성을 생각하면 지금보다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 .
 
다리가 불편하신 것 빼고는 그만하면 건강하신 편이다. 하지만 마음에 병이 생기신 듯 우울해하신다. 얼굴을 볼 때마다 눈물을 보이신다. 어린아이처럼 슬퍼하는 그 마음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 드시고 싶은 것 있으세요?"
"없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먹어도 무슨 맛인지 모르는 멍충이가 돼버렸어."
일평생 자식을 먹여 살리신 어머님께 해드릴 게 없는 나 자신이 보잘것없고 초라하다. 부모라는 큰 나무 그늘에서 편히 지내다가 반대로 내가 그늘이 돼주어야 할 때가 왔다. 하지만 무엇을 어찌하면 좋을지 허둥대며 변명만 하는 나를 보면서 내리사랑의 참다운 의미를 생각한다.
 
어머님은 자식의 행복을 위해 조건 없고 희생적인 사랑을 주셨고, 그것을 당신의 행복으로 받아들였다. 자식이면서 부모 입장인 나는 어머님을 보면서 배운다. 내리사랑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늙고 가엾은 어머님을 슬프게 하지 않는 것이 받은 사랑에 걸맞은 도리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나 명예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일 것이다. 내 아이들이 웃으면서 살아가는 모습이 값지게 느껴지는 것처럼. 요즘같이 힘든 시기에는 더더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