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영화 위키드 잊지 못할 추억

빛나는 오늘 2024. 12. 2. 21:39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를 거야. 나는 한계가 없어."
 
위의 노래 가사는 영화 "위키드" 후반부에서 주인공 엘파바의 폭발적인 가창력에서 전율이 느껴지는 Defying Graviti (디파잉 그래비티)의 일부분이다.
 
기다렸던 영화 위키드를 딸 유이와 보고 왔다. 우정, 도전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음악과 함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해주는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남다른 기억이 있는 작품이기도 해서 더욱 특별한 기분이 느껴졌다.
 
내게는 추억이 담긴 티셔츠가 한 장 있다. 초록 피부를 가진 위키드의 주인공 엘파바가 마녀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프린팅되어 있다. 10년 전의 유이에게 받은 선물이다. 당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딸 유이가 여름방학에 집에 와서 "엄마 선물이야." 하며 티셔츠를 내밀었을 때 '유아스럽네!' 하고 웃었다. 하지만 딸이 티셔츠를 사게 된 배경을 듣고는 마음이 아프기도 하고 감동스럽기도 했다.
 
유이가 미국에서 고등학교 2학년(11학년)에 재학 중일 때였다. 위키드 원작을 읽었던 유이는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뮤지컬이 있다는 소식을 알고 보고 싶어 했다. 한날은 유이와 화상 통화를 했다.
"엄마! 이번 여름방학에 관심 가는 미국 대학을 투어(여행) 해보고 싶어."
"너 혼자서?"
" 그럼, 혼자지. 가고 싶은 학교들도 둘러보고 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위키드 뮤지컬도 꼭 보고 싶어."
" 글... . 세다."
말끝이 흐려지며 뭐라 대답해 줘야 할지 난감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왠지 위험할 것도 같아서 반갑게 응원해 주기도 뭐 했다. 결국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잘 알아보라는 말로 끝을 맺었었다.
 
마음먹은 일에는 고집을 꺾지 않는 유이는 기어이 모든 일정을 짜놓은 후에 나와 남편에게 통보하듯 알렸다. 문제는 미성년자(당시 미국 나이 16세)는 혼자 여행할 수 없고 하더라도 어떤 책임도 져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달아야 했다. 결국 혼자서 일주일간의 대학 투어를 감행했다. 휴대전화도 없는 아이가 지도한 장만 들고서. 휴대전화가 없는 이유를 간략히 말하자면 자신은 학교와 집 생활이 다이고 이메일과 화상 통화로 자주 하면 되니 휴대전화 필요 없다고 장만하지 않았었다.
 
본인이 관심 가지고 있던 대학을 일일이 대중교통 또는 걸어서 찾아다녔고 기념품과 엽서 등을 사기도 했다. 맛집도 물어물어 찾아가고 말이다. 기대하던 위키드 뮤지컬을 보기 위해 뉴욕 브로드웨이 극장에 가야 했었다. 찾아가는 어려움이 있었는지 두 시간을 걸어서 도착했다고 한다. 가는 길에 흑인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소리 지르는 통에 겁을 먹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반응을 안 하니 그냥 지나가더란다.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다. 예약한 호텔과 연락이 안 되는 바람에 또 한 번 위기였지만 어느 친절한 유학생 언니 덕분에 무사히 해결하기도 했다.
 
정말 운이 좋았을 뿐 위험천만한 여행이었다. 미국에서는 미성년자가 혼자 여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인 것을 엄마인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유이의 대학 친구들도 그때의 얘기를 무용담처럼 들려주면 "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게 기적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어찌 됐든 유이는 인생의 값진 경험을 했고 원하던 위키드 뮤지컬을 보고 엄마에게 줄 티셔츠와 엽서를 사서 무사히 홈스테이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그 뮤지컬이 최근 국내에서 영화로 개봉됐으니 보러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의 "난 높이 날고 있어 중력에서 벗어나서"는 주인공 엘파바가 한계를 넘어서고자 결심하던 순간을 노래한 것이다.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눈물이 멈춰지지 않았다. 10년 전에 딸아이가 느꼈을 감정이 떠오르고 지금의 내 모습 또 지금의 딸 모습이 한꺼번에 겹쳤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감정이 파도처럼 덮쳐왔다.
 
엘파바는 초록색의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마녀다. 다르다는 것을 거부하는 사회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수많은 난관과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 용기가 무엇 일지 알게 한다. 환경 탓하지 않고 압박과 편견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를 찾아가는 주인공에게서 딸의 모습이 보였다.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배운다.
 
 
 

'일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생은 여행이다  (1) 2024.12.04
내리사랑이다  (0) 2024.12.03
포기할 수 없는 사랑  (1) 2024.11.30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좋은 시작 점이다  (2) 2024.11.29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날의 맛  (1) 2024.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