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아이가 유치원에 다닐 때였다. 선생님이 정해준 시간에 맞추어 한밤중에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러 유치원으로 가곤 했다. "허허허" 특유의 웃음소리와 "엄마 아빠 말씀 잘 들었느냐"라는 말에 잔뜩 겁에 질린 딸아이 얼굴이 또렷이 기억난다. 급하게 갔는지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의 사진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요즘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 대신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온다. 007작전처럼 아이 몰래 선물을 숨겨놓고 서프라이즈를 계획한다. 한 달 전부터 아이들은 산타 할아버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린다. 착한 어린이만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어른 들의 말을 순수하게 믿으면서 말이다. 막상 산타 할아버지를 만나면 머리 굵은 녀석은 수염을 만져보기도 하고 모자를 벗어보라고도 하지만, 한참 어린아이는 소스라치며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참으로 어린아이답다.
내가 기억하는 크리스마스 추억은 초등학교 4학년쯤이다. 시골 마을에 딱 하나 있는 교회의 전도사였던 삼촌은 평소에는 교회에 억지로 데리고 가지 않았지만, 크리스마스가 되면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교회에 데리고 갔다. 늦은 밤까지 교회의 작은 행사에 참여하고 과자와 공책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 새벽에는 교회의 언니 오빠들이 동네를 돌며 찬송가를 불렀었다.
딸 유이가 미국 유학 시절 경험한 크리스마스는 매우 달랐다. 우리나라 설날처럼 가족이나 친척들이 모여 따뜻한 말을 나누고 선물을 주고받는 전통이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북적북적한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좋았고, 얼굴도 모르는 먼 친척들조차 자신을 잊지 않고 선물을 챙겨준 것이 생소하지만 감동이었단다.
유이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소소한 선물들을 자랑하곤 했다. 딸이 손으로 쓴 카드 외에는 자신은 선물을 주지 못했다.라고 했을 때 부모로서 미안함이 컸다. 종교가 없던 우리 가족에게 크리스마스 날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어린 딸은 미처 선물을 준비 못 하고 받기만 한 것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다는 걸 알려 주었어야 했다. 이후로는 크리스마스가 돌아오면 미리 호스트 가족의 선물을 챙겼다. 내 자식을 돌봐주는 고마움으로 배편은 40일가량이 소요되고, 비행기는 비용이 만만찮았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호스트 가족도 선물을 종종 보내오곤 했다. 유이가 다른 집으로 옮기기 전까지 해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주고받았다. 지금도 따뜻한 목도리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이브다. 나와 아이의 크리스마스에 관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크리스마스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종교를 넘어선 따뜻한 마음의 축제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특별함이 있어서 좋고,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과 사랑이 있는 하루라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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