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점심엔 보통 볶음밥이나 카레, 짜장밥 중의 하나다. 오늘은 볶음밥이다.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 볶음밥에 순두부 호박국을 먹었다. 든든하게 먹고 휴식을 위해 따뜻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직장에서의 점심은 고른 영양과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해 주어서 감사하다. 일과 중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다.
창밖을 보니 눈이 쌓이고 있다. 첫눈치고 폭설이다. 아침에 남편은 회사에서 눈 치울 일이 걱정이라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처럼 나가서 뛰놀고 싶다. 출근길에 눈 쌓인 나무를 보았다. 아직 단풍이 그대로다. 울긋불긋 낙엽이 아직인데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하나둘 커피를 들고 휴게실에 모인다. 커피 향이 퍼진다. 카페인을 거부하는 내 몸은 따뜻한 둥굴레차를 좋아한다. 둥굴레 뿌리를 말린 향이 좋다. 잎 차보다 뿌리 차가 좋다. 나무도 잎보다 뿌리에 더 관심이 간다. 튼튼하고 단단 함이 좋아서인지 잎보다 뿌리가 마음에 든다. 은은한 둥굴레 뿌리의 단맛이 올라온다. 잠시 눈이 오는 풍경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는 중이다.
큰딸 유이는 오늘 물리치료를 받으러 가는 날이라서 눈길이 괜찮을지 걱정이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문자를 넣었다. 둘째 재이에게는 취준생을 탈출한 기념으로 커피 쿠폰과 함께 간식을 '카톡 선물하기'에서 골라 보냈다. 남편은 회식이 잡혔단다.
그야말로 특별한 것 없는 아주 보통의 하루다. 최근 겪은 여러 가지 복잡한 일들로 인해 오늘처럼 무탈한 보통의 하루가 결코 무시 못 할 특별함이란 걸 깨닫는다. 남편이 갑자기 응급실에 가는 아찔함을 경험했고, 전세 만기가 다가오는 집을 수리해서 계약해야 했다. 약속된 연차 휴가를 직장의 사정으로 미뤘는가 하면, 몸살감기 증세에 시달려 약을 지어 먹기도 했다.
그러니 이렇듯 따뜻한 차를 마시며 커피 향이 진한 공간에서 별일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는 시간이 행복하다. 책도 서너 페이지 읽고, 쓰고 싶은 마음이 동하여 한 줄 한 줄 글을 써 내려가기도 한다. 늘 오늘 같을 수만은 없는 삶이지만 보통의 하루가 참으로 감사하였다.
내 가족은 각자의 충실한 시간을 보내고 저녁이면 돌아와 얼굴을 보겠지. 하루를 돌아보며 성찰하는 식구도 있을 것이고, 자신을 칭찬해 주며 뿌듯해하는 식구도 있을 터다. "오늘도 다들 별일 없이 잘 지냈구나! "라고 나는 생각하겠지.
아주 보통의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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