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마음이 담긴 국밥 한 그릇

빛나는 오늘 2024. 12. 29. 23:10

 


밤새 끙끙 않았다. 독감 주사를 맞아 둘걸 ... 해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지만, 올해는 병원 갈 시간조차 여유롭지 않아 건너뛰었다. 콧물이 쉴 새 없이 흐른다. 휴지를 아예 머리맡에 놓고 잤다. 깊은 잠을 못 자고, 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
 
어제부터 몸이 안 좋았지만, 타이레놀에만 의지했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은 버틸 걸 버텨야지 바보 같다며 폭풍 잔소리를 했다. "혼자는 병원 못 가냐. 아픈데 왜 참고 있어." 남편이 밉다. 아픈 사람에게 꼭 그렇게 혼내듯이 말해야 하나 싶었다.
 
아침에 일어나 휴일에 문 여는 병원을 검색해서 주섬주섬 옷을 입고 갔다. 가는 길에 남편이 사준뜨거운 레몬 차 한잔에 기운이 났다. 병원에서 독감 검사를 하겠냐고 물었지만,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어서 안 한다고 했다. 검사 비용만 비쌀 뿐이라는 걸 안다. 1분도 안 걸리는 진료를 보고 나왔다. 남편 말이 맞았다. 간단할 일이었는데 버틴 꼴이 되었다.
 
일요일이라서 문을 연 약국을 찾는데도 한참이나 걸린다. 오들오들 강아지처럼 떨고 있는 내게 약도 먹어야 하니 콩나물국밥을 사주겠단다. 술 때문에 해장을 위해 갔던 가게인데 감기에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남편이 주차하는 동안 먼저 들어갔다.
 
이른 오전 10시가 막 넘은 시간이지만 자리가 없을 만큼 가게 안은 북적였다. 자리가 없으니 다른 손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먹어도 되겠냐고 사장님이 물어보셨다. 돌아서 나오기엔 기력도 없고 아무렴 어떤가 싶어 그러겠다고 했다.
 
보글보글 끓는 뚝배기에 콩나물이 수북하게 올라가 있다. 김 가루와 날계란을 넣어서 먹으라고 친절한 설명까지 해준다. 뜨거운데 시원하다. 알맞게 익은 깍두기를 국밥 위에 올려서 먹으니 살 것 같다. 몇 년 전에도 심한 몸살감기를 앓았을 때 황태 콩나물국밥을 먹고 기운을 차렸던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도 생각났는지 이번에도 맛있게 먹고 감기 뚝 떨쳐버리라 한다.
 
아침에 잔소리할 때는 미웠는데. 이젠 고맙다. 병원에서 두꺼운 외투를 입을 때도 밖이 춥다며 지퍼를 목까지 올려 주었었다. 휴일에 문을 연 병원을 찾아온 사람들로 많았지만 개의치 않고 옷을 단단히 여며 줄 때 오랜만에 어린아이가 된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이렇게 다정하던 때가 많았는데 언젠가부터 자꾸 꼰대가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짜증이 늘고, 잔소리가 늘어 간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 호르몬의 변화를 겪는다던데 그래서인가 싶어 은근히 불만이 많았었다.
 
아파보니 옆에 있는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알겠다. 밉다가도 고맙다. 아픈 나 대신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을 챙긴다. 평소에도 이런 고마움을 자주 느끼면 좋을 텐데... . 사소한 것에서 감동하고 마음이 녹는데 말이다.
 
친정엄마가 늘 강조하시던 말이 생각난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귀한 줄 모른다."라고 했었다. 그 얘기는 가까운 가족일수록 귀하게 여기고 소중하게 대하라는 뜻이다. 서로가 소중하다고 느낀 하루의 감정을 잊지 말고 잘 간직하자. 서로 미워질 때마다 오늘 먹은 따뜻한 국밥을 떠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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