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거절 못하는 것도 병이다

빛나는 오늘 2024. 12. 28. 23:06

 내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 '가 먼저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말고 누가 또 있겠는가. 그럼에도 주도적인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 '그렇다'라는 대답이 선뜻 안 나온다.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병이다. 고약한 불치병이다. 고쳐보려고 애쓴 적도 있지만 사람 쉽게 바뀌지 않는다. 커피를 권하는 따뜻한 마음을 거절 못 하고 반 잔을 마셨다. 카페인이 있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밤을 꼴딱 새웠다. 마시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추운 날에 포장해 온 정성을 거절하지 못했다.
 
금요일이고 내일은 주말이니 잠 좀 못 자면 어떠랴 했지만 젊지 않은 나이에 밤새 쉬지 못하는 건 '안될 말'이라는 걸 미처 생각 못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쑤시고 목이 찢어질 듯 아프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따뜻한 꿀물 한 잔을 마셨다. 걸걸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간신히 나온다.
'바보같이 커피를 왜 마셔서는.'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픈 몸을 이끌고 단골 미용실에 갔다. 미리 약속을 해둔 터이고, 오늘이 아니면 시간이 나지 않아서다. 단발이 치렁치렁해서 질끈 묶고 다녔더니 지저분해 보였다. 깔끔한 단발로 자를 심산이었다. 단골 미용 선생님은 내 머리를 잘 알아서인지 파마하기 딱 좋은 기장이라며 은근히 파마를 권했다. 구불구불함이 자연스러울 거라며.
 
"선생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말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냥 단발로 자르는 게 나을뻔했어.' 생각했다.
 
'남들도 나 같을까.' 문득 생각했다. 내 삶이고, 내 인생인데 왜 주체적으로 살지 못할까. 내 생각이 먼저라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결정적 순간에는 타인의 감정을 살피는 몹쓸 고질병이다. 지치고 힘들 때일수록 무기력해진다. 남에게 의지하고 싶어진다. 내 무의식은 의지보다 복종하는 것에 길들어 있나 보다. 마치 강아지가 자기 밥을 주는 사람을 따르듯 굴복의 편안함을 선택한다.
 
하지만 안다. 문제없는 삶은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태도가 해결책 이란 걸. 함께 살아가지만 결국 선택은 내 몫이다. 오늘부터라도 내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보자!
 
남편에게 약국에 들러 약을 사다 달라고 문자를 넣었다. 아프니까 도움은 받아야지.
 
 

'일상. 에세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면 살아진다  (0) 2024.12.30
마음이 담긴 국밥 한 그릇  (2) 2024.12.29
다이어트의 정석  (0) 2024.12.27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나이  (5) 2024.12.26
작은 습관의 힘  (1) 2024.1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