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나의 이름은?

빛나는 오늘 2024. 9. 26. 08:00

어머님 나이 이제 구순이다.  아직은 기억력 좋으시고,  건강하시다. 가리는 음식 없이 소식을 즐기신다. 하루를 단순하고 규칙적으로 보내신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간단한 집안일을 하신다. 냉장고 정리도 하고, 그날 먹어야 할 각종 약을 잊지 않기 위해 종류별로 정리하신다. 새벽 5시가 되면

노인용 보행 보조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한 시간 산책한다. 매일의 컨디션에 따라 시간 조절을 하긴 해도 날씨를 상관하지 않는다.

지금은 시골집이 아닌 형님 집에서 지내신다. 연로 하시기도 하고, 여름이 막 시작 되었을 때 팔을 다치신 뒤로 형님댁에서 모시기로 한 까닭이다.

"작은 아야. 사느라고 고생이다"

막 결혼 해서부터 지금껏 내 이름은 '작은 아'다. 처음에는 '작은 아가'라고 불리다가 줄임말이 되어 '작은 아'가  되었다. 어찌 됐든 머리가 희끗한 반백의 며느리가 듣기에는 조금은 닭살스럽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그만 불러달라고 할 수도 없고 이제 와서 다른 이름도 어색할 것 같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나에게 붙여진 다정한 이름이다.

"작은 아야 얘들 갈키느라 고생이 많다"

"작은 아야 사느라 애쓴다"

"작은 아야 살 뺀다고 굶지 말고 밥 먹어라"

어머님의 어투는 다정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식구에게 화를 낸 모습을 본적도 없다.

내가 책을 통해 그토록 얻고자 하는 삶의 해답이 어머니에게 있다. 매일 새벽에 하는 산책, 건강한 식습관,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그것이다. 더구나 밤나무 집 며느리로서 없는 살림을 일으킨 근검절약이 일평생 몸에 배이신 분이다. 어찌 현인을 책에서만 찾겠는가. 더없이 존경스럽고 대단한 분이다.

일찍이 배움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해 한글도 첫 손주 얻고서 익히신 걸로 안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배움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계신다.

큰 아이 유학을 보낼 때도 학비에 허덕일 아들 걱정이 먼저 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쓴소리 한마디 없으셨다. 오히려 등록금에 보태라며 큰돈을 주셨다. 가끔 책이라도 읽고 있으면 공부한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남들이 뺏어가지 못하는 것이 공부니라 많이 해라"라며  마음을 편하게 해주신다.

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는 없다. 내가 갓 시집을 왔을 당시에도 체구가  작고  단아하셨다. 지금은 더 작아지고 얼굴엔 주름과 나이 꽃이 피었지만 표정만큼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없이 온화하다.

이제는 밤농사를 지을 기력이 없어 밤은 혼자서 익고 혼자서 떨어진다. 다람쥐들의 식량이 되고, 주변 사람들의 쏠쏠한 간식거리 외엔 누구 한 사람 수확하러 갈 사람이 없다. 말씀은 안 하시지만 마음이 어떠실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작은 아야. 유이 밤 좋아하는데. 내가 이리 운신을 못하고 있으니 " 하신다.

지금쯤 마당엔 대추가 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렸을 것이다. 빨갛게 익은 석류가 벌어져 어머님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유이야  주말엔 할머니 시골집으로 밤 따러 가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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