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노릇이 아직도 서툴다. 우리 엄마는 여섯이나 되는 자식을 어떻게 키웠을까. 초등학교에 가기 전 엄마는 나를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는 말을 한 적 있다.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엄마에게 야단을 맞은 날에는 ‘진짜 엄마’가 찾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심부름으로 작은 김치 항아리를 옮기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박살이 났다. 깨지는 소리가 퍽! 하고 어찌나 무섭던지. 엄마의 불벼락이 떨어지겠구나!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었다. 김치가 흙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김치만 못 먹게 된 것이 아니고 항아리까지 깼으니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아이고! 김치 못 먹게 됐네! 아까워서 어쩌냐!"
실수를 저지르고 나서 혼나겠구나 싶으면 예상 적중이었는데 뜻밖에도 그게 다였다.
책이나 드라마에서의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네가 많이 놀랐겠다. 다치지는 않았니? 괜찮다. 그깟 김치가 대수냐! 항아리야 또 사면 되지.“
내 현실 엄마는 내가 잘못을 저지르면 전후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빗자루를 들고 설친다. 드라마 속의 엄마는 현실에 없는 엄마였다. 텔레비전 속 세상은 가짜이거나, 아니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말한 대로 친엄마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친엄마와 지금의 엄마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공상했었다. 이상하게도 친엄마가 어딘가에 있을 거로 생각하면 기분이 풀리고 좋아졌다.
사춘기 때 사소하고 별일 아닌 것으로 엄마와 많이 부딪혔다. 화가 나면 뭘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먹으라는 밥도 안 먹고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척을 했다. 정말로 열심히 공부한다고 생각했는지 한번은 옆집 할머니에게 밥도 안 먹고 공부만 한다며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다. 열심히 책을 보긴 했다. 교과서가 아닌 하이틴 소설을. 추리 소설에도 푹 빠졌었다. 혼자만의 세계에서 살았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얼마나 속이 까맣게 탔을까.
엄마가 태어나고 두 돌 무렵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외할아버지 혼자서 딸 넷을 키웠다. 엄마의 삶이 어땠을지 눈으로 보지 않았어도 짐작이 된다. 스무 살에 외할아버지가 정해준 아버지와 결혼했고, 종갓집 장손 며느리로 육 남매를 낳아 키웠다. 엄마도 부모가 처음이었으니 많이 서툴렀을 것이다. 자식인 나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완벽한 부모가 되어주지 못한다고 불평과 불만을 일삼기만 했다. 나 역시 책에서 보던 속 깊은 자식이 되지 못했으면서 말이다.
엄마는 우아하지는 않았지만 투박한 사랑을 주었다. 사랑니가 올라올 때 무진장 고생한 기억이 있다. 너무 아파서 머리도 깨질 듯하고 먹지도 못했다. 가을 수확이 한창이던 때라 무척 바쁜 시기였지만 엄마는 추수한 수수로 찰지고 부드러운 부꾸미를 만들어 주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기름 냄새가 진동했고 붉은 수수 전을 하고 있었다. “우리 딸 주려고 했지, 먹어봐! 찰지게 잘 되었다.” 일주일 가까이 사랑니로 고생고생하다 먹은 수수부꾸미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나도 엄마를 닮았다. 서툰 사랑을 투박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엄마와는 다르게 드라마에서 나오는 우아한 엄마가 되어보려고 노력도 한다. 겉으로 표현하는 감정이 다는 아니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 사랑이다. 이왕이면 우아한 엄마로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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