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4

그리움과 후회

아버지의 기일이다. 영정 사진 속의 아버지는 살아생전에 늘 그랬듯이 우리 막내딸 왔냐며 환한 웃음으로 반겨주신다. 엄마도 아버지 옆에서 수줍게 미소 짓고 있다. 여섯 남매가 한자리에 모인 걸 보니 두 분 다 좋은 신가 보다. 고기를 올리고 과일과 떡, 전과 탕국을 정성스레 올리는 오빠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덧없는 마음이 밀려온다. 생전에도 이렇게 푸짐하게 대접해 드리지 못했는데, 이 많은 음식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병원 생활을 하셨을 때, 어린 두 아이 때문에 자주 찾아뵙지 못해 미안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음식을 만들어 가곤 했다. 입맛을 잃은 아버지였지만 막내딸의 정성을 봐서인지 억지로 드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한번은 장어가 몸보신에는 그만이라는 얘기를 듣고는 무작..

일상. 에세이 2024.12.17

겨울이 오면 그리운 아버지

아버지의 기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찌 12월 한겨울에 떠났을까. 아버지와의 첫 추억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그날은 여느 날처럼 동네 골목이 시끌벅적했다. 언니 오빠들 틈에 끼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해가 지자, 날은 더 추워졌다. 골목 저만치서 아버지가 걸어오셨다. 손에 든 큼지막한 과자 상자가 보였고 그것이 아버지보다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태어나 처음으로 구경한 오리온 초코파이였다. 당시에는 파란색 상자에 갈색 빵의 그림이 있었고 상자 크기도 꽤 컸다. 아이들의 눈이 일제히 과자 상자에 쏠렸다. 일순간에 조용해진 골목 안이었다. 언니 오빠를 지나서 내게 걸어오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 품에 떡하니 안긴 과자 상자 덕분에 한동안 우쭐했다. 오빠도 언니도..

일상. 에세이 2024.12.10

아버지의 선물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따사로운 햇볕 아래 놀이터에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물들어 가는 나뭇잎을 손바닥에 올리고 있다. 막 익기 시작한 감나무의 감이 아이들 노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다. 한 아이가 말한다. "저건 감이야!" 옆에 있는 아이가 말을 받는다. "나는 감 먹어봤어!" 그러자 다른 아이가 말한다. "나는 감 밥 먹어봤어! " 아이들의 대화가 천진스럽다. 감 밥이라니. 감을 먹어봤다는 아이에게 더 세게 보이고 싶은가 보다. 문득 친정집 감나무가 떠오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빈터만 있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마당에 있는 커다란 단감나무만이 푸른 잎과 열매를 맺으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는 감을 좋아했다. 시골인데도 다른 집과는 달리 우린 감나무가 ..

일상. 에세이 2024.10.08

내 손에 쥔 곶감 처럼 특별한

얼마 전 아버지 산소에 다녀왔다. 아버지 옆에 엄마도 나란히 있다. 살아생전 늘 함께 했던 것처럼. 추석 때 찾아보지 못해서 시간을 내었다. 문중의 선산은 이제 관리하는 사람도 없나 보다. 명절에만 하는 벌초라서 그런지 잡풀이 무성하다. 선산 관리가 안 된다는 이유로 주변의 봉분들은 하나 둘 비어간다. 관리가 되는 납골당으로 자손들이 옮겨 간 것이다. 지나다니는 짐승들만이 쓸쓸하게 말벗을 해주고 있는가 보다. 흰머리가 희끗한 막내가 온 줄 알면 왔냐는 말도 못 할 만큼 반가워서 활짝 웃기만 할 텐데. 종가의 장손이었던 아버지는 문중에서 가장 어른이었다. 아버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아버지에게는 늘 깍듯이 예의를 갖추었고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허락을 구했다. 작은 아버지들의 도박으로 논 밭을 ..

일상. 에세이 2024.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