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에세이

좋아야 할 수 있는 일

빛나는 오늘 2024. 10. 20. 00:05

무엇이 바쁜지 요즘에 독서가 뜸해졌다. 읽고 싶은 책들이 눈앞에 쌓여 있는데도 잠시 앉아서 펼쳐보는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 책이라고는 써본 적 없는 내가 겁 없이 공저에 도전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려놓고 시작했기에 초고와 1차 퇴고까지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다른 참여자들의 글을 읽으면 주눅이 들어 포기하게 될까 봐서 읽지도 않았다.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데 아니다. 활발하게 이루어져 가는 공저 진행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부담과 압박감이 시작됐다. 최소한 민폐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를 붙잡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얼핏 들으니 퇴고가 시작되면 머리가 빠지고 지옥에 빠진다더니 빈말 같지 않았다. 글도 좋아지기는커녕 본래의 내 감정마저 사라지고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고 있었다. 손댈수록 좋아지라고 기대했는데 손댈수록 내용이 산으로 가고 있었다. 이것이 실력 차인가보다. 초고의 원고를 옆에 두고 다시 감정의 흐름대로 고쳐나갔다. 다시 아마추어 글이 되었다. 나는 프로가 아닌 것이 당연했으니 글은 딱 내 수준이 되었다. 그렇지만 내 글이 아닌 것 같을 때보다는 만족스럽다. 이대로 간다면 분명 욕이나 먹을 것 같다. 선택해야 한다. 원래 실력대로 유치한 글을 쓸 것인가. 밤새 죽어라 고쳐보든가.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이왕이면 잘하고 싶으니까. 일단 노력은 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히 있었다. 이쯤에서 드는 생각. ‘에이 글쓰기 포기할까? 어깨도 아프게 직장생활하랴, 살림하랴 가 뜨이냐는 벅찬데 이참에 핑계로 삼아 때려치우는 거야.’ 하루나 이틀은 핸드폰도 안 보고 노트북 근처에도 안 간다. 그러다가 그놈의 노예근성 같은 것이 나를 책상에 앉힌다. 내가 나의 노예이다. 끌려다니는 삶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면서도 스스로 굴레에 갇혀 살고 있다. 루틴의 굴레 그리고 목표의 굴레에 말이다. 어느 온라인 플랫폼 모임에서의 도반 이야기가 생각났다. “다 귀찮아요. 잘할 필요도 없고, 이유도 없는데 루틴을 붙잡고 사는 게 의미 없게 느껴져요”라고 했다. 많이 지쳐 보였다.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인생이고 더구나 자기 계발하는 사람들은 늘 자신과 싸우는 사람들이기에 공감이 가면서도 당시에는 이해가 안 되기도 했었다. ‘힘들면 쉬어도 될 텐데. 왜 쉬지 못하는 걸까?’ 했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지금 내 얘기가 되었다. 급할 이유가 없다. 내려놓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내 안의 나에게 갇혀버린 느낌이다. 타인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가장 무섭다. 도망갈 수도 없고, 숨을 수도 없다. 언제나 두 눈 부릅뜨고 내 안에서 지켜보고 있다. 혹시 무슨 강박이라도 있는 건가. 설마 마음이 아픈 사람은 아니겠지. 별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당사자 입장이 되고 보니 백번 이해가 간다. 쉬면 다시 시작을 못할 것 같은 것이고, 자신에게 지고 싶지 않았던 거다. 사람은 그래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결론은 하루 이틀 농땡이 부리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사람에겐 회복탄력성이 있다고 하더니 신기하게도 힘이 생긴다. 잘 될 거라는 희망 회로를 마구 돌리며 빠져나오게 되었다. 오늘도 원고를 열 시간 가까이 노려보며 손이 느려 진도가 안 나가는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블로그에 들어와서 되지도 않은 얘기를 혼자 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남편은 고속도로보다 국도를 선호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구불거리는 길이 불편한데 왜 국도를 고집하냐고 물었었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지루한 고속도로는 재미없어. 나무도 가까이 보고, 들판에 철마다 달라지는 농작물을 보며 가는 것이 훨씬 기분 좋아. 바쁜 거 없잖아? 쉬엄쉬엄 기분 좋게 즐기며 가는 것이 여행이야.” 맞는 얘기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천천히 내가 원하는 속도대로 가면 되는 것이다. 삶은 과정이다. 가을 햇살이 유혹하는 근사한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노트북 앞에만 앉아있는 것은 결국 좋아하기 때문이다. 싫으면 돈을 준대도 누가 하겠는가. 엄마 원고 검토 끝나기만을 온종일 기다리고 있는 이쁜 딸내미와 맛있는 저녁을 먹고 마무리해야겠다.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었던 오늘에 감사하고 도와주는 가족이 있어 행복하다. 글쓰기는 그래서 행복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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