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4

다시 찾을 수 없는 그날의 맛

겨울, 이른 첫눈이 내렸다. 나뭇잎 위에 소복소복 올라앉은 눈이 밥공기 같기도 하고, 엄마가 가끔 만들어 주던 하얀 찐빵 같기도 하다. 문득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초등학교 시절, 그땐 국민학교라 불렀다. 눈이 오는 날이면 엄마는 특별한 간식을 만들어 주었다. 팥이 가득 든 찐빵이 그것이다.눈이 많이 오는 날에 엄마가 밀가루를 꺼내면 신이 났다. 반죽이 살짝 질어야 빵이 부드럽다고 엄마는 말했다. 늘어지는 반죽을 손안에 빠르게 가두며 삶은 팥을 넣고 잘도 오므렸다. 아버지는 미리 가마솥에 불을 지펴놓고 물을 끓이며 대기하다가 보자기를 깐 채반에 반죽을 올려놓고 한 김 나게 푹 찌면 완성이다. 모양은 울퉁불퉁했지만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찐빵을 호호 불어가며 먹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간식은 눈이 펑..

일상. 에세이 2024.11.28

아주 보통의 하루,그래서 더 특별한

수요일 점심엔 보통 볶음밥이나 카레, 짜장밥 중의 하나다. 오늘은 볶음밥이다. 갖가지 재료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 볶음밥에 순두부 호박국을 먹었다. 든든하게 먹고 휴식을 위해 따뜻한 공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주 하는 생각이지만 직장에서의 점심은 고른 영양과 균형 잡힌 식단을 제공해 주어서 감사하다. 일과 중 밥 먹는 시간이 가장 좋다. 창밖을 보니 눈이 쌓이고 있다. 첫눈치고 폭설이다. 아침에 남편은 회사에서 눈 치울 일이 걱정이라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처럼 나가서 뛰놀고 싶다. 출근길에 눈 쌓인 나무를 보았다. 아직 단풍이 그대로다. 울긋불긋 낙엽이 아직인데 소복이 쌓여 있는 모습이 생경했다. 하나둘 커피를 들고 휴게실에 모인다. 커피 향이 퍼진다. 카페인을 거부하는 내 몸은 따뜻한 둥굴레차를 좋..

일상. 에세이 2024.11.28

좋아야 할 수 있는 일

무엇이 바쁜지 요즘에 독서가 뜸해졌다. 읽고 싶은 책들이 눈앞에 쌓여 있는데도 잠시 앉아서 펼쳐보는 즐거움을 놓치고 산다. 책이라고는 써본 적 없는 내가 겁 없이 공저에 도전했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려놓고 시작했기에 초고와 1차 퇴고까지는 오히려 마음이 편안했다. 다른 참여자들의 글을 읽으면 주눅이 들어 포기하게 될까 봐서 읽지도 않았다. 피하고 싶다고 피해지는 데 아니다. 활발하게 이루어져 가는 공저 진행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부담과 압박감이 시작됐다. 최소한 민폐는 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원고를 붙잡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얼핏 들으니 퇴고가 시작되면 머리가 빠지고 지옥에 빠진다더니 빈말 같지 않았다. 글도 좋아지기는커녕 본래의 내 감정마저 사라지고 나무토막처럼 딱딱해지고 있었다. 손댈수록 좋아지라고..

일상. 에세이 2024.10.20

행복은 이미 내 안에 있었다

낙엽 하나가 사선을 그리며 발아래 떨어진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들여다보니 작고 벌레 먹은 나뭇잎이지만 내 것 같아 특별해 보인다. 나만 느끼는 작은 행복이다. 부자가 되고 싶어서 열심히 살았다. 많이 가져야 삶이 윤택해지는 거라고 믿었고, 행복은 미소 지으며 내게 올 줄 알았다.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삶은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마치 어렸을 때 가난한 우리 집이 이해되지 않을 때처럼. 내 부모는 부지런한 부자들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다. 사시사철 게으른 적 없었고 허리가 휘게 일하는데 왜 우린 항상 그 자리 그대로 가난한 것일까. 실제로 엄마에게 물어본 적도 있었다." 엄마랑 아버지는 매일같이 새벽에 일하러 나가서 어두워져서야 집에 오는데 왜 우린 부자가 안 돼?" 정확한 대답은 기억나지..

일상. 에세이 2024.10.17